동래지신밟기(2021,부산시)

종목 개요

  • 비경연대회

종목소개

복을 부르는 마음으로

해양도시 부산에 자리잡고 있으면서도 동래에는 바다가 없다. 명산으로 손꼽히는 금정산을 뒤로하고 넓게 트인 지형은 임진왜란 당시 이곳이 주요 격전지였다는 것이 쉬이 납득이 간다. 도시를 단단하게 감싸는 동래읍성과 복천동 고분군 등 곳곳에 문화재가 산재해 있고, 임진왜란 때 부산에서 순절한 조상의 위패를 모신 충렬사도 이곳에 있다. 『삼국사기』에서는 동래에 ‘거칠산국’이 있었다고 기록한다. 이를 뒷받침하듯 1980년에 발굴한 복천동 고분에서는 금동관·무기 등이 출토되었으며, 남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배산의 정상 부분과 산복 부분에 이중의 토성이 발견되기도 했다. 고대 국가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흔적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도 바로 이곳, 동래에 자리한다. 금정산의 기암괴석과 노송이 어우러지는 풍경을 벗삼아 휴식을 즐기기 위해, 부산은 물론 경상도 곳곳에서 동래온천을 찾았다. 이처럼 동래에는 기원을 알 수 없는 오랜 역사를 품은 유물이 많다. 오래된 것은 미래의 거울이다. 동래는 가장 오래된 역사를 품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동래지신밟기 역시 동래의 정신을 관통하는 놀이 중 하나다. 동래지신밟기는 매년 새해를 맞아 정초부터 보름 사이에 동래에서 즐기던 마을 공동체 놀이다. 기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이어져온 덕에 매구·벅구놀이·걸궁·걸립·풍장·풍물놀이·마당밟기·뜰밟기 등 전해지는 이름도 제각각이지만 풍물을 치며 액운을 풀어내고 한바탕 즐기자는 의미는 한결같다. 각 가정이 평안하고 태평하기를, 재앙은 없애고 복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소박한 바람 때문일까? 놀이 특유의 화려한 채복도 동래지신밟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를 입고 삼색띠 대신 고깔을 쓴다. 마당놀이에서는 소고춤과 북놀음, 잡색들의 해학적인 연희가 돋보이며, 지신풀이 선율과 사설 내용은 촘촘한 짜임새를 자랑한다. 동래지신밟기는 1935년경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중단되고 말았다. 광복 이후 각 마을 단위에 걸쳐 연희되기 시작했다가 1977년 11월 13일에 이르러서야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며 문화재형 놀이로 새롭게 출발했다. 등장인물은 사대부·포수·하동·각시 등 인물과 사물 및 호적·소고 등으로 구성된 35명 내외로 대개 사대부가 총 지휘자를 맡고, 하동과 포수가 생원과 각시를 상대로 벌이는 해학적인 연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낸다. 놀이의 밑바닥에는 양반의 위선을 풍자하는 내용도 깔려 있다. 대체로 정월 초사흘경부터 지신밟기를 시작해 주산지신풀이, 당산지신풀이, 우물지신풀이, 각 가정 지신풀이의 네 마당으로 구성된다. 먼저 주산지신풀이와 당산지신풀이를 하고 마을로 내려와 간단하게 우물풀이를 한 다음 각 가정을 돌면서 본격적인 지신풀이에 들어간다. 각 가정을 돌면서 하는 지신풀이는 마당에 들어가 놀이를 한 다음 대청 앞에 차려진 고사상 앞에서 대청풀이를 하고, 이어서 큰방풀이, 각방치장풀이 순으로 진행한다. 그 후 부엌·장독·도장·마구간·뒷간·삽짝 등을 돌며 조왕풀이·장독풀이·도장풀이·마구간풀이·뒷간풀이·삽짝풀이·주신풀이 순으로 지신을 밟아 나간다. 이렇게 집안을 한차례 돌고 나면 비로소 잡신을 누르고 1년간 마을과 각 가정의 안과태평과 풍농, 재복을 기원하는 놀이가 모두 마무리된다. 동래지신밟기는 다른 놀이에 비해 풀이 사설이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풍물에 상모놀이가 없는 대신, 굿거리 장단에 어우러지는 동래 지역 특유의 우아한 덧배기춤은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 중 하나다.

주요 장면 구성

  1. 주산지신풀이 동구 밖 정자나무 아래나 유지의 집 뜰에 놀이꾼이 모이면 기잡이를 앞장세우고 주산으로 향한다. 행렬은 날라리(태평소)·꽹과리·징·장구·북·소고 사대부·팔대부·촌로·촌부·각시·하동·포수 순서로 줄을 서서 나아간다. 이때 잽이는 길쇠(길군악)를 친다.
  2. 당산지신풀이 당산에 도착하면 주산과 마찬가지로 제사를 올리고 당산지신풀이로 들어간다. 세게 치던 장단을 멈추고 북과 장구 반주로 풀이가 계속된다.
  3. 대청풀이 성주풀이-나무작벌, 성주풀이-나무재단, 성주풀이-나무운반, 성주풀이-집터보기, 성주풀이-집터닦기, 성주풀이-집짓기, 성주풀이-집고사 순으로 진행한다.
  4. 성주풀이-큰방풀이 장단이 멈추면 북과 장구 반주로 풀이가 이어진다. 잽이들은 풀이하는 상쇠를 따라다니지만, 다른 놀이꾼은 마루와 마당에서 춤을 춘다.
  5. 주신풀이 놀이가 끝나면 모두 주인집에서 차려 내놓은 술과 안주를 먹고 올 때와 마찬가지로 다음 순서인 집으로 이동한다.

민속 현장에서

“함경도에 백두산이 있다면 태백산을 거쳐 그 정기를 받아 내려온 것이 바로 동래의 금정산입니다. 남쪽의 가장 끝, 동래가 그 기를 이어받은 가장 마지막 땅인 셈이지요. 그 때문일까요? 동래는 예로부터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부촌이었습니다. 임금도 가장 똑똑한 사람을 뽑아 동래에 부사로 보내곤 했습니다. 일본과 가까운 변방인 탓에 싸움에 취약한 만큼, 무역에는 아주 좋은 자리였으니까요. 동래를 거쳐 쌀과 잡곡, 인삼과 같은 주요한 물건이 거래되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본이 풍부하고 부자가 많았지요. 집이 크니 지신밟기를 해도 하루에 고작 두세 채를 도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방이 많으니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니 말입니다. 그래서 놀이 절차도 안방·큰방·대청마루·사랑방 등 종류별로 구분이 확실하게 되어 있지요. 지신밟기 하는 날에만 양반의 집을 구경할 수 있었으니 마을 사람들에게는 정월 즈음 매일이 잔치였습니다. 온천장이라는 유흥지를 끼고 있으니 놀이문화도 잘 발달되어 놀이 자체도 아주 흥겹게 이루어지고요. 그 안에 동래 특유의 소박하면서도 섬세한 예술정신도 잘 담겨 있습니다. 동래는 예로부터 임진왜란을 방어해낸 동래읍성전투의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지요. 싸워서 지더라도 액운에게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 이게 바로 지신밟기에 담겨있는 우리의 정신입니다. 잡귀나 잡신, 액운을 모두 쫓고 건강한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바람, 어쩌면 지금 우리 시대에 가장 절실한 놀이가 아닐까요.” ⟶ 김준호(동래지신밟기 연출자)

문화재 지정 현황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동래지신밟기 (1977.11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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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 출처 : 『제62회 한국민속예술제』 백서
  • 발행일 : 2021년 12월 30일
  • 기획 :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동영상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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