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정보
전주기접놀이(2011,전라북도)
종목 개요
구 분 | 내 용 |
---|---|
참여대회 | 제52회 한국민속예술축제 및 제18회 전국청소년민속예술제 |
참여지역 | 전라북도 |
분야 | 민속놀이 |
참여단체 | 전주기접놀이보존회 |
수상(단체상) | 동상 (국립민속박물관장상) |
종목소개
전라북도 전주시 삼천동과 평화동의 여러 마을에서 농기[農旗]를 가지고 벌이던 민속놀이로, 용기[龍旗]놀이 또는 계룡리 합굿으로도 부른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 무렵까지 성행했으나, 이후 1956년까지간헐적으로 전승이 이루어지다가 중단되었다. 1974년 풍남제에서 재현된 후 현재까지 매년 백중일에 기접놀이가 행해진다. 전북 전주시 삼천동과 평화동은 옛 전주부의 우림면, 난전면으로 불리다, 후에 우전면으로 불리던 곳으로, 현재는 전주시 삼천동 2가에 편입되어 있다. 기접놀이는 일제강점기 당시 탄압으로 소멸하였으나, 우림면 계룡리의 4개 마을(함띠, 용산, 비아, 정동) 일대는 당시 면장[面長]의 보호 아래 마지막까지 명맥을 이었다고 한다. 이곳 모악산의 수려한 자연 속에 광활하고 비옥한 농토가 있으며, 후덕한 인심과 더불어 전라북도를 대표하는 농심[農心]의 고장이기도 하다. 고증에 따르면, 기접놀이는 난전면 중평, 산정, 학전 같은 마을과 우림면의 계룡리 4개 함띠, 용산, 비아, 정동마을 주민들이 칠월 칠석이나 백중에 다른 마을의 초청으로 술맥이굿을 벌이며 하루를 보내는 것으로,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민중 행사이자, 백중날 각 마을의 단결을 다짐하며 열리던 일꾼 중심의 축제였다. 1974년 제16회 풍남제 민속놀이 재현 자료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용기[龍旗]는 고종 31년(1895) 8월 15일에 평화동 중평마을에서 제작된 것이다. 당시 상좌 임성숙과 회원 윤공여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용 그림은 1936년 벽곡이 그렸다고 되어있다. 1930년대에 제작된 비아마을의 용기와 1940년대에 제작된 정동마을 용기가 현재까지 전해지는데, 여러 곳이 찢기고 헐어 긴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용기에는 용을 비롯해 거북이와 잉어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농경문화에서 용신을 섬기는 전통적인 공동체 신앙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원래 각 마을은 똑같은 크기의 용기와 백기[白旗]를 가지고 있었으며, 백기는 남성기[男性旗]라고 해 마을 공동작업인 두레와 마을 주민 행사에 등장했고, 용기는 여성기[女性旗]라고 해 합굿놀이때만 등장했다. 한여름 모내기를 끝내고 두세 차례 김매기를 마치면 칠월 칠석이나 백중 무렵이 된다. 이때 합굿놀이를 주최하고자 하는 마을이 총회를 열어 합굿 일정을 결정한 후 이웃한 형제 마을을 초청한다. 기접놀이의 인원은 좌상 4명(4개 마을 각 한 명씩), 공원 4명(4개 마을 각 한 명씩), 기재사 4명(4개 마을 각 한 명씩), 농기수 4명(4개 마을 각 한 명씩), 영기수 8명(4개 마을 각 두 명씩), 사동 4명(4개 마을 각 한 명씩), 나팔수 4명(4개 마을 각 한 명씩), 풍물패 44명(4개 마을 각 열 한 명씩) 등으로 구성된다.
용기 크기는 폭 3m에 길이 5m로, 흰 광목에 용을 그렸으며, 기주[旗柱]와 접촉 부분에는 제작 연월일을 기록했다. 기주는 길이 8m에 지름 15~20cm의 대나무를 사용하는데, 과거에는 영구 보존을 위해 대나무 속에 나무를 깎아 채워 만들었으나, 현재는 대나무만 사용한다.
내용
놀이의 연행 과정은 다음과 같다.
- 기접놀이 결정 비아마을 모정[茅亭] 앞 광장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한다. 마을의 좌상을 비롯한 유지들이 모정에 모여 기접놀이에 관해 논의한다. 좌상의 주도로 행사에 필요한 경비와 기타 사항을 논의해 결정한다. 이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은 좌상의 지시로 알림판을 들고 영기[令旗]를 든 채 마을을 한 바퀴 돌며 마을 사람들에게 알린다. 그리고 풍물패는 한바탕 흥겨운 굿판을 벌인다.
풍물굿이 끝나면 좌상은 모든 마을 사람들에게 백중날 이루어질 행사에 대해 소상히 설명한다. 설명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야-” 하는 함성으로 답한다. 백중날 기접놀이를 하기로 하고, 주변 마을을 모두 초청해 풍년을 기원하는 잔치를 베푸는 것이다. 마을 회의에서 결정한 문제는 공원[公員]을 통해 잔치를 준비하고, 마을 전령은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 잔치 날짜를 알리며 참석 여부를 묻는 전령을 보낸다. 전령은 영기를 앞세우고 정동마을, 용산마을, 함띠마을을 차례로 돌며 기접놀이를 알린다. 전령을 맞이한 마을에서 입구 오른쪽에 영기를 꽂으면 초청에 응한다는 것이며, 입구 양편에 영기를 꽂아놓으면 불참하겠다는 표시가 된다.
- 마을회의 초청된 각 마을의 좌상이 사동[使童]을 앞세우고 등장한 후 모정 위에 자리를 잡는다. 이때 사동이 마을 이름이 적힌 간판을 들고 어른들 뒤에 서 있으면 회의가 시작된다. 백중날 아침에는 각 마을의 좌상과 유지가 모여 농사철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점과 송사[訟事]를 처리하고, 보를 막거나 용배수로의 위치를 변경하는 일, 도수로를 개설하는 일과 같은 마을 공동의 연중 사업 규모를 서로 토론해 결정짓는다.
마을 회의는 마을 간 친목은 물론이려니와 마을 공동체 구성원의 결속력을 다지는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의사 결정 행위다. 이러한 행사를 통한 구성원의 자발적 참여는 전통사회의 지역성과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기본적 토대가 된다.
이웃 마을 손님 접대 비아마을 풍물패는 두 패로 나뉘는데, 한패는 영기를 앞세우고, 다른 한패는 정동마을로 마중을 나간다. 이때 정동마을 풍물패와 중간 지점에서 만나 서로 인사하고 약속 장소인 삼천천변으로 모인다. 이와 같은 형태로 용산마을, 함띠마을 풍물패를 맞이한다. 중간 지점에서 만난 풍물패와 마을 사람들은 영기를 서로 교환한 후 한바탕 흥겨운 풍물을 치고 이동한다. 초청한 마을 사람들도 초청에 응한 마을 사람들을 마중해 손님을 접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판굿 천변에 집결한 마을 네 곳의 풍물패와 마을 사람들은 질서정연하게 정렬한다. 이때 각 마을 어른들이 모인 모정을 향해 한 마을씩 인사굿을 한다. 어른들에 대한 인사가 끝나면 비아마을은 동쪽에, 정동마을은 남쪽에, 용산마을은 북쪽에, 함띠마을은 서쪽에 진을 쳐 자리를 잡는다. 각각 자리를 잡은 풍물패는 흥겨운 풍물굿을 하며 흥을 돋운다. 흥겨운 풍물판이 끝나면 각 마을이 풍물굿 솜씨를 자랑하기 위해 순서에 따라 한가운데로 나와 풍물굿판을 벌인다. 마을 대항 풍물경연대회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때 마을 좌상들이 공정하게 심사해 가장 잘한 마을에 상을 내린다.
용기이어달리기 마을 이름이 적힌 간판을 든 사람들이 백여 미터 지점에 십 미터 이상의 간격을 두고 반환점을 세운다. 비아마을 공원의 지시에 따라 용기를 든 첫 장정이 출발 지점에 서고, 용기이어달리기를 하기 위해 차례로 경주 대형으로 도열한다.
첫 번째 주자가 용기를 들고 뛰다가 중간 지점에서 대기하고 있는 두 번째 주자에게 넘겨주고, 두 번째 주자는 반환점을 돌아 세 번째 주자에게 용기를 넘겨주며, 세 번째 주자는 중간 지점에서 네 번째 주자에게 용기를 넘겨준다. 이렇게 해 가장 먼저 도착한 마을이 우승하는 것이다. 이긴 마을의 장정들은 진 마을의 고삐를 잡은 채 마을 전체의 풍물소리에 맞춰 춤을 춘다.
- 용기놀이 용기이어달리기에 이어 흥겨운 놀이판이 끝나면 우승한 마을부터 곱게 단장한 마을의 기재사[旗才士]가 용기를 높이 들고 풍물소리에 맞춰 의기양양하게 등장한다. 한가운데에 등장한 기재사는 둥그렇게 늘어선 풍물패 속에서 용기놀이를 벌인다. 마을의 힘센 장정이 벌이는 용기놀이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힘과 기[氣] 그리고 예[禮]가 곁들여진 용기놀이는 오랜 기간의 훈련과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용기놀이를 통해 마을 장정들이 힘을 드러내고, 용기놀이를 가장 잘한 장정은 모든 이의 인기를 독차지했다고 한다. 용기놀이에는 기펼치기, 기높이들기, 내려깔기, 파도타기, 마당쓸기, 고네받기, 이마놀이, 어깨놀이, 기나발, 용기춤 등이 있다.
용기부딪치기 용기놀이가 절정에 달해 마을 사람들의 흥이 올라있는 상태에서 네 개의 용기가 한데 뭉치는데, 이를 ‘용기부딪치기’라고 한다. 서로 기를 맞대놓고 높이 뛰며, 깃봉이 땅에 떨어진 마을은 곧 기의 제작연도를 현재로 바꾸며 마을 주민 모두 상위 마을에 인사한다.
합굿 기세배가 끝나면 마을 네 곳의 주민 모두가 합세해 합굿놀이를 한다. 이때 모든 마을의 주민과 풍물패가 하나로 어울려 대동굿판을 벌인다. 각 마을 주민은 물론 인근 마을에서 구경나온 사람들까지 하나로 어울려 굿판을 벌인다. 합굿이 끝나면 초청한 마을인 비아마을이 각 마을의 중간 지점까지 환송한다.
전주기접놀이는 본래 술메기 과정에서 나타나는 합굿맞이와 용기놀이에 초점을 두고 재현된 민속놀이다. 술멕이는 한 해 농사의 반 매듭을 짓는 행사로, 백중 무렵 술과 음식을 나눈다. 이때 기 다루기는 술메기의 정점에서 행한다. 두레꾼끼리 힘자랑도 하고 기예를 다투기도 하며 흥을 돋우는 게 본래 취지이지만, 간혹 경쟁심이 지나쳐 우발적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야말로 우발적이며 지엽적인 일이다. 전주기접놀이의 원형인 합굿맞이와 용기놀이는 전라도의 수부이며 대표 격 곡창지대인 전주의 위상과 특성을 반영하는 문화적 산물이다. 천하지대본인 농사일의 한 매듭을 짓고 그동안의 노고를 위무하는 과정에서 재밌고 정교하며, 예술성까지 담아내는 마을 문화의 정수이며, 전주기접놀이는 그 문화적 가치를 계승한 결과물이다. 전주기접놀이는 마을 내부의 결속과 마을 간 화해와 상생을 지향하며 공동체성을 회복게 하는 가치를 지닌다.
문화재 지정 현황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전주기접놀이 (2018.03지정)
관련링크
자료출처
- 출처 : 『한국민족예술축제60년. 변화와 도약 해적이』
- 발행연도 : 2019.12.31
- 기획 :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사진자료
동영상자료
민속곳간이 제공한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입니다.
출처 표기 후 사용가능하나, 상업적 이용 및 내용을 변형 또는 재가공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