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정보
평양검무(2023,평안남도)
종목 개요
구 분 | 내 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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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대회 | 제64회 한국민속예술제 |
참여지역 | 평안남도 |
분야 | 민속무용 |
참여인원 | 38명 |
참여단체 | 평양검무보존회 |
수상(단체상) | 전승상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사장상) |
종목소개
종목명 해설
고양시 2022년, 인구 100만 명 이상의 특례시로 출범한 고양시는 우리 역사에서 지방행정제도에 따라 여러 변화를 겪어왔다. 현재 3개구, 44개 동으로 구성돼 광역시에 버금가는 규모를 자랑하고 있으며, 국제 전시컨벤션이 가능한 공간과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공존하는 도시다.
진밭두레농악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성석동 진밭마을에서 전승되는 농악을 일컫는다. 일제 강점기 어려움을 딛고 1919년 독립만세운동을 계기로 부활했으며, 성석 진밭 두레패는 2005년 고양시 향토문화유적(무형문화유적)으로 지정됐다.
정보
지역 경기도 종목 농악 인원 45명 단체 정발초등학교 연합팀 지정 고양시 향토문화유적, 2005년
본문
광주산맥의 말단부에 위치한 고양시는 동쪽으로는 높은 산지가, 서쪽으로는 낮은 구릉과 하천 퇴적지인 곡저평야로 구성되어 있다. 북한산과 우암산을 이웃하고 서남쪽으로는 한강이 흐르니 사람이 터전을 잡고 살기에 이만한 곳이 없었을 테다. 또한 고양은 가장 오래전 농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5020년 전, 서기 2000년경에 사람이 심은 것으로 추정되는 가와지볍씨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의 재배벼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고양이 한반도 농경문화의 기원이며 한강문화권을 중심으로 벼농사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해주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한반도 농사의 기원을 품고 있는 도시답게 이곳은 농경 사회를 중심으로 문화예술도 풍부하게 발달했다. 그중에서도 진밭두레농악은 고양시 일산동구 성석동 진밭마을에서 전승되어 왔으며 농사일을 할 때 두레를 짜고, 두레패가 농사일의 흥을 돋우기 위해 연행하던 농악이다. 두레는 농촌 사회의 핵심 역할을 하는 자발적 공동체였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서로 돕고, 일손이 필요할 때는 함께 일하며, 마을의 질서를 깨뜨리거나 어지럽히는 일을 막았으며 마을마다 두레를 표시하는 깃발도 존재했다. 모내기에서 물대기, 김매기, 벼베기, 타작까지 이르는 논농사 경작을 위한 모든 과정에 두레가 함께 일했으며, 특히 많은 인력이 합심해야 하는 모내기와 김매기에는 거의 반드시 두레가 동원됐다. 물론 마을의 공동 잔치로 진행하는 풋굿이나 호미씻이와 같은 논농사 이후 놀이의 중심에도 두레가 있었다. 대체로 모내기나 추수를 마친 뒤 공동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여 음식과 술을 나누고, 농악에 맞추어 여러 연희를 곁들여 뛰고 놀면서 농사로 인한 노고를 잊고 결속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두레패와 마찬가지로 진밭두레 역시 조선 초기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침체를 겪었다. 당시 일제가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농촌의 농악과 두레를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진밭마을은 1919년 기미독립만세운동 당시 농기에 태극기를 달고 참여하였고, 이후 진밭두레와 농악패를 재결성해 100년간 전통의 원형을 보존하며 명맥을 이어왔다. 오늘날 진밭두레 농악에는 옛 농경 공동체 생활 풍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산신에게 제를 지내는 산제사에서부터 농사소리, 농사놀이, 상여소리, 회 다지소리, 지경소리, 대보름 쥐불놀이, 농악놀이까지 한 당시 지역민들의 생활문화를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진밭두레패는 변주가락을 다양하게 구사하는 일반적인 연희 농악과 다르게 기본 가락에 충실하면서도 장단마다 끊어치며 만들어내는 웅장함이 일품이다. 다른 농악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악기인 제금을 사용하며, 법고 수도 많다. 특히 농악패와 농사꾼이 진을 짜면서 연주와 놀이가 어우러지는 놀이 판제인 농사놀이에서 을(乙)자진, 원진, 멍석말이, 방울진, 십자진, 사각진(사통백이) 등 다양한 진법을 구사하여 놀이의 총체적 효과를 극대화한다.
과장 구성
- 길맞이 징이 울리면 두레패가 무대 중앙으로 들어가고, 농악패와 자진가락을 맺는다. 이후 삼채장단으로 기수단·농부·잡색이 큰 원 안에, 농악대는 바깥에 중앙을 바라보고 선다.
- 길놀이굿 상쇠가 안으로 들어가며 멍석말이를 시작한다. 농부는 소고잽이 꼬리를 물고 따라 돌며, 멍석말이를 풀어 큰 원이 만들어지면 농부와 소고가 중앙으로 들어가 논다.
- 제1당산놀이 악기와 소고가 좌우로 벌려 상쇠를 보고 마주서고, 농부는 기수단 앞에 횡대로 섰다가 쓰레질 놀이와 논뚝 다지기를 한다.
- 사방치기와 네줄백이 당산놀이가 끝나면 큰 원을 만들어 사방치기로 전환한다. 두레패와 농악패가 두 개의 원을 만들어 전후좌우로 이동하며 연희하다가, 다시 자진가락과 삼채장단에 맞춰 네줄백이로 전환한다.
- 제2당산놀이 농부가 앞 뒤 좌우로 뒷걸음질하며 콩을 심고 풀을 베며 농사 놀이를 하고, 소고는 양상치기 후 제자리로 전환, 장단을 내주면 양 절구놀이 대형으로 전환하여 연희한다.
- 사통백이와 방울진 사방원진을 풀어 큰 원을 그린다. 원을 돌며 농부는 바깥쪽, 소고는 안쪽으로 교차하여 이동한다. 농부는 자리를 잡고 춤추며 놀고 소고는 마주보고 벅구놀이로 받는다.### 본문 화려한 화폭을 자랑하는 김홍도의 <평안감사향연도> 가운데 <월야선유>를 보자. 대동강 위에는 평안감사가 탄 배가 떠 있고 악기를 연주하는 악대와 관선, 관기들이 탄 배, 음식을 준비하는 배와 잔치에 참여한 이들이 탄 배가 줄지어 따르고 있다. <부벽루 연회도>에선 관기들의 춤이 벌어지는데, 포구락과 검무·처용무·헌선도 등의 모습이 엿보인다. <연광정 연회>에선 사자놀음이 펼쳐지는 사이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학춤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조선 시대 연회에 빠지지 않는 것이 춤, 그중에서도 검무의 모습은 자주 등장한다.
칼을 들고 추는 춤을 지칭하는 검무의 역사는 상고 시대까지 거슬러간다. 수렵하던 시기에는 사냥을 나가기 전과 사냥을 마친 뒤 행운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칼을 들고 춤을 췄다. 삼국 시대에는 나라별로 칼춤이 전해졌는데,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는 신라 황창랑(黃昌郞) 설화가 전해진다. 그는 생몰 미생의 무동으로, 신라왕을 대신해 백제에 대한 원한을 풀고자 그곳에 들어가 칼춤을 추다 백제왕을 찔러 죽였다고 한다. 이를 검무의 기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고려 시대에는 황창무를 계승한 가면희가 성행했고, 처용무와 검무가 함께 추어졌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는 기녀가 검무를 추는 형태로 전승됐다. 여기들의 검무는 점차 화려해지고 지역색도 갖추게 되는데, 정조 때 들어서는 궁중의 정재로 정착한다. 정재 검무는 그 양식이 더욱더 견고하게 이어져오게 됐으며, 이후 교방이 설치된 지역을 중심으로 향제 교방검무가 발전하면서 진주검무·통영검무·호남검무·경기검무·해주검무·평양검무 등으로 확장하게 된다. 조선 시대 여기 검무의 모습은 여러 점의 풍속화로도 살펴볼 수 있다. 김홍도·신윤복·김준근 등 화가의 작품에 검무를 추는 여기가 등장하며, 시대에 따라 무구 또한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 여러 문인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토록 교방검무가 사랑받은 것은 예술성 때문이다. 칼을 꺼내기 전에는 정적인 춤을 보여주고, 후반부에는 칼을 매개로 외향적이고 동적인 동작을 펼치는 데서 음과 양, 내향과 외향의 이중적 요소가 조화롭게 결합한다. 또한 넓은 공간을 사용하지 않지만 역동적인 춤을 보여주며, 기본 춤사위를 기반으로 화려한 동작을 선보인다.
평양검무의 음악은 삼현육각 반주로 염불-타령-자진타령-타령장단 순으로 짜여 있다. 평안도식 피리 가락을 주조로 장구 장단의 타령이 섞인 것이 독특하게 나타난다. 춤은 2열 4행 8검무를 기본으로 한다. 두 명의 춤꾼이 서로 상대하며 추는 대무 구성이기 때문이다. 칼을 들고 열을 지어 선 뒤 판석도리 입춤·앉은춤·칼춤·연풍대 순으로 연행한다.
양손에 든 검의 모양새도 독특하다. 손잡이를 고정한 채 칼이 돌아가는 회전 검으로, 가장자리에는 일곱 쌍의 제비가 날아갈 듯 달려 있고, 칼자루 끝은 곡선으로 구부러져 있으며, 다른 검무의 무구와 달리 동으로 제작된다. 무복으로는 기개를 드러내듯 노랑 저고리에 남색 치마, 남색 쾌자를 입고 허리에는 홍띠를 맨다. 붉은색 털로 끈을 꼬아 둘레에 두른 검정 상모, 공작미를 단 전립은 평양검무만의 특색이다. 전복에는 오방색이 반영돼 있고, 노랑색 저고리는 방위의 중심이자 무원을 대표하는 색이 된다.
춤사위를 살펴보면 여인만의 아름다운 멋이 풍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정갈하게 절제하면서도 무게감이 느껴지고, 역동적인 가운데 정중동이 잘 드러난다. 단단한 표정과 입술에는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자신감을 표현하며, 칼을 돌리거나 뽑는 동작이 웅장미를 보여준다. 팔사위에서 이뤄지는 역동성과 달리 정적인 발디딤에는 여인의 단아한 자태가 묻어난다.
과장 구성
입장 : 타령에 맞춰 기수를 앞세우고 악사가 있는 위치까지 칼을 돌리며 입장한다.
선춤사위 : 한쪽 옷자락을 붙든 채 기본자세를 중심으로 한 입춤을 선보인다. 무원들은 두 줄로 서서 교차하며 동작을 이어간다.
앉은춤사위 : 이후 대형을 유지한 채 앉은춤으로 전개되며, 팔사위를 부각해 보여준다. 평양검무의 하이라이트인 칼춤에선 한칼 사위, 쌍칼 사위, 칼뽑기 동작, 반돌기 사위, 연풍 사위, 좌우 칼돌리기, 번개 사위 등 양손에 든 검을 중심으로 화려한 춤사위를 보여준다.
대무 : 빠른타령에 맞춰 두 사람이 짝을 이뤄 마주 보고 춤을 이어간다.
연풍대 : 대형을 바꿔 두 개의 큰 원을 그린 뒤 연풍대를 연행한다.
마무리춤과 퇴장 :
처음 대형으로 돌아와 주요 동작을 선보인 후 마무리 절하고 퇴장한다.## 문화재 지정 현황이북5도 무형문화재(평안남도)(2001년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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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 출처 : 『제64회 한국민속예술제』 종목소개서 * 발행일 : 2023년 9월 22일 * 기획 :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사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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