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농악(2024,부산시)

종목 개요

구 분 내 용
참여대회 제65회 한국민속예술제
참여지역 부산시
분야 농악
참여인원 43명
참여단체 부산농악보존회
수상(단체상) 우수상(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수상(개인상) 입장상(부산농악보존회)

종목소개

본문

천마산 기슭의 부산 아미동에선 옛 부산부의 중심인 원도심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과거 가장 번화했던 중심지에서 살짝 비낀 변두리. 그러나 이러한 도시의 그림자가 없었다면 부산이 제2의 수도로 불릴 만큼 번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지금의 역사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 마을은 개항 초기부터 현재까지 부산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부산 서구에는 개화기 이전부터 농경지가 많아 농악이 번성했고, 각종 농악대회가 자주 열렸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됐고, 농악 역시 빠르게 사라져 명맥만 간신히 유지하는 실정이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이 뜻을 모아 1952년 아미농악단을 창단하게 되는데, 이것이 현재 부산농악의 시초로 꼽힌다. 아미농악단은 연희로 생계를 충당하는 전문 걸립패로, 각지에서 풍물 연희자로 활동하던 이들이 전쟁을 계기로 아미동에 모이게 된 것이다.

당시 아미농악단의 주된 활동은 이렇게 이뤄졌다. 정초인 음력 초사흘 부산 아미동에서 걸립을 시작해 유월까지 부산 전역을 돌고 차츰 동해안 해안선을 따라 포항 구룡포까지 뻗어 나갔다. 하절기에는 남해안 해안선을 따라 걸립을 하기도 했으며, 때때로 절걸립과 포장걸립을 했다.

1960년대 아미농악단의 활동은 부산을 넘어 경상도 일대로 뻗어나갔다. 뛰어난 기예를 갖춘 연희자들이 활동하고, 여러 경연대회에서 수상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이다. 그리고 1980년 들어 ‘부산아미농악’, ‘부산농악’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부산농악’은 부산광역시 무형유산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부산농악은 강인함을 갖고 있으면서도 경상도 특유의 흥이 배 있는 부드러운 춤이 가미된 것이 특징이다. 춤사위가 다양하고 덧배기장단이 많이 들어가 있으며, 판제에는 농사풀이의 모습이 등장한다. 상쇠놀음과 상모·벅구놀이, 또 설장구 등 각 악기 치배들의 기예도 무척 뛰어나다. 특히 북가락이 일품으로 꼽히는데, 그 기교에는 지역색이 잘 드러난다. 또한 들벅구(들버꾸)를 제외한 모든 치배들이 상모를 쓰고 등장해 상모놀이를 하는 것도 보는 재미를 더하는 부분이다.

과장 구성

하나. 첫째마당 : 흩어진 농악단원을 집합시키기 위해 상쇠가 단마치를 울리면 모둠굿으로 전원이 한자리에 모인다. 행진굿인 길군악을 울리고 농기를 선두로 세워 행진한 후 인사굿을 올린다. 이후 맞춤굿을 하며 모든 재비들이 대형을 맞춰 선다. 이 부분은 부산농악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부분이다. 호호굿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마당굿을 하며 본격적으로 판을 열기 위한 준비를 마친다.

둘. 둘째마당 : 늦은 춤 장단에 맞춘 상모꾼들의 웃장놀음이 일품이다. 집주인을 부르는 문굿, 오방의 잡귀를 몰아내는 오방진굿, 마을 우물이 청정하고 넉넉하기를 바라는 우물굿이 차례로 진행된다. 이후 굿거리굿·덧배기굿·호호굿·가락굿이 진행되고 영산다드래기로 마무리한다.

셋. 셋째마당 :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적힌 농기를 앞세워 농사풀이를 진행한다. 씨뿌리기부터 모찌기·모심기·김매기·벼베기 과정을 연희로 보여준 뒤 풍년굿을 치며 흥겹게 풍년가를 부른다. 경상도 특유의 굿거리장단과 덧배기장단으로 마무리한다.

넷. 넷째마당 : 치배들의 개인놀이를 엿볼 수 있는 마당. 상쇠로 시작해 상모·장구·대북, 그리고 열두발 상모가 대미를 장식한다.

문화재 지정

부산광역시 무형유산, 1980년

사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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