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정보
영변성황대제(2024,평안북도)
종목 개요
구 분 | 내 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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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대회 | 제65회 한국민속예술제 |
참여지역 | 평안북도 |
분야 | 전통의례 |
참여인원 | 20명 |
참여단체 | 영변성황대제보존회 |
수상(단체상) | 전승상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사장상) |
종목소개
본문
한반도 북부의 평안북도는 서해와 맞닿고 북쪽으로는 압록강을 경계로 중국과 마주하고 있는 땅으로, 신의주에 도청이 자리하고 있다. 여러 물줄기가 흘러가는 이곳은 만주 대륙과 가까워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를 보인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평북 영변은 가파르고 험한 지형인 탓에 오래전부터 외적을 방어하는 요지로 작용했다고 한다. 시에도 등장하는 약산은 구룡강 기슭에 있는 곳인데, 약초가 많고 약수가 난다고 해서 ‘약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약산동대는 관서 8경으로 꼽히는 곳이다.
영변군에는 유달리 고목이 무성하게 자라났는데, 이런 곳에는 늘 성황당(서낭당)이 차려졌다. 사람들은 마을의 수호신을 모셔놓은 제당인 성황당에서 올리는 성황대제를 당굿이라고 불렀다. 평북에서는 영변 당굿과 철산 당굿이 유명했는데, 두 곳이 각각 북당과 남당의 수호신으로 숭앙됐다. 그중에서도 시장 상인들이 장터계를 조직해 경비를 부담하고 유지들로부터 기부를 받았던 북당이 좀 더 우세했다고 한다.
성황대제를 위해서는 우선 당시 영변 객사 앞에 있던 영변학교 도로에 세 개의 계단으로 된 짚 지붕을 만들어 제단을 설치했다. 여기에 오색천과 조화로 장식한 다음 제를 지냈다. 대제를 지내기 위해서는 막대한 제비가 들기 때문에 주로 1년에 한 번만 열렸고, 질병을 피하고 입신과 출세를 기원하는 집에서는 그 비용을 부담해 제를 올리기도 했다. 부락민 가운데 연장자인 유지나 제사를 받드는 일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제관으로 선정됐다. 신주로는 무녀 5~6명과 장고·징·제금·꽹과리·새납 등 악기 연주자들이 여럿 참여했다.
대제가 시작되면 제관과 만신 관계자들이 성황당에 나아가 제사를 올린 뒤 신위를 가마에 태워 행진했다. 이들은 장수복으로 바꿔 입은 뒤 말을 타고 제장이 차려진 곳으로 향했는데, 제단에 도착하면 신위를 제단에 모시고 대제를 봉행하게 된다. 당굿은 닷새 혹은 일주일간 계속되며, 무녀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춤과 노래를 하면 이를 구경하던 부락민들이 합세해 대동놀이로 마무리한다.
영변성황대제에서 연행되는 춤은 접신으로 인해 표현되는 의례 형식을 띤다. 즉, 신이 지시하는 행동이나 언어를 악가무 형식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영변에서는 이런 형식을 ‘거상’이라고 불렀다. 거상에 연주되는 의례음악은 거상악이라고 하며, 관현악 편성으로 화려하게 연주되는 것이 특징이다. 장구는 상장구와 하장구로 구성되며, 하장구가 리듬을 보완하고 소리를 받아주는 역할을 한다. 상장구는 무악을 이끌며, 제관만신과 호흡을 맞춰 성황대제를 진행한다. 특히 푸념이나 뒷전에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주로 사용하는 장단으로 푸념장단·비나수장단·긴염불장단·자진염불장단·굿거리장단·벅구 장단·굿 장단 등이 있다.
과장 구성
하나. 비나수 : 신접을 위해 모든 신령을 불러들이는 비나수 의식을 시작한다.
둘. 신장굿 : 다리굿에 앞서 행하는 열두 거리 굿의 하나로, 여러 종류의 장군 옷과 모자를 쓰고 신장신을 모시는 굿거리를 시작한다.
셋. 작두굿 : 액살을 풀어내고 악귀를 누르는 굿으로, 평안도 굿에서는 여러 장군 중에서도 최영 장군을 신접한다. 화려하게 풀어내는 장면의 하나로, 만신이 오방기를 흔들고 관객에게 뽑게 해 재수를 살핀다.
문화재 지정
이북5도 무형유산, 2007년
자료출처
- 출처 : 『제65회 한국민속예술제』종목소개서
- 발행일 : 2024년 10월 11일
- 발행처 : 구미시,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종목소개
종목명 해설
고양시 2022년, 인구 100만 명 이상의 특례시로 출범한 고양시는 우리 역사에서 지방행정제도에 따라 여러 변화를 겪어왔다. 현재 3개구, 44개 동으로 구성돼 광역시에 버금가는 규모를 자랑하고 있으며, 국제 전시컨벤션이 가능한 공간과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공존하는 도시다.
진밭두레농악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성석동 진밭마을에서 전승되는 농악을 일컫는다. 일제 강점기 어려움을 딛고 1919년 독립만세운동을 계기로 부활했으며, 성석 진밭 두레패는 2005년 고양시 향토문화유적(무형문화유적)으로 지정됐다.
정보
지역 경기도 종목 농악 인원 45명 단체 정발초등학교 연합팀 지정 고양시 향토문화유적, 2005년
본문
광주산맥의 말단부에 위치한 고양시는 동쪽으로는 높은 산지가, 서쪽으로는 낮은 구릉과 하천 퇴적지인 곡저평야로 구성되어 있다. 북한산과 우암산을 이웃하고 서남쪽으로는 한강이 흐르니 사람이 터전을 잡고 살기에 이만한 곳이 없었을 테다. 또한 고양은 가장 오래전 농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5020년 전, 서기 2000년경에 사람이 심은 것으로 추정되는 가와지볍씨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의 재배벼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고양이 한반도 농경문화의 기원이며 한강문화권을 중심으로 벼농사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해주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한반도 농사의 기원을 품고 있는 도시답게 이곳은 농경 사회를 중심으로 문화예술도 풍부하게 발달했다. 그중에서도 진밭두레농악은 고양시 일산동구 성석동 진밭마을에서 전승되어 왔으며 농사일을 할 때 두레를 짜고, 두레패가 농사일의 흥을 돋우기 위해 연행하던 농악이다. 두레는 농촌 사회의 핵심 역할을 하는 자발적 공동체였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서로 돕고, 일손이 필요할 때는 함께 일하며, 마을의 질서를 깨뜨리거나 어지럽히는 일을 막았으며 마을마다 두레를 표시하는 깃발도 존재했다. 모내기에서 물대기, 김매기, 벼베기, 타작까지 이르는 논농사 경작을 위한 모든 과정에 두레가 함께 일했으며, 특히 많은 인력이 합심해야 하는 모내기와 김매기에는 거의 반드시 두레가 동원됐다. 물론 마을의 공동 잔치로 진행하는 풋굿이나 호미씻이와 같은 논농사 이후 놀이의 중심에도 두레가 있었다. 대체로 모내기나 추수를 마친 뒤 공동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여 음식과 술을 나누고, 농악에 맞추어 여러 연희를 곁들여 뛰고 놀면서 농사로 인한 노고를 잊고 결속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두레패와 마찬가지로 진밭두레 역시 조선 초기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침체를 겪었다. 당시 일제가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농촌의 농악과 두레를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진밭마을은 1919년 기미독립만세운동 당시 농기에 태극기를 달고 참여하였고, 이후 진밭두레와 농악패를 재결성해 100년간 전통의 원형을 보존하며 명맥을 이어왔다. 오늘날 진밭두레 농악에는 옛 농경 공동체 생활 풍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산신에게 제를 지내는 산제사에서부터 농사소리, 농사놀이, 상여소리, 회 다지소리, 지경소리, 대보름 쥐불놀이, 농악놀이까지 한 당시 지역민들의 생활문화를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진밭두레패는 변주가락을 다양하게 구사하는 일반적인 연희 농악과 다르게 기본 가락에 충실하면서도 장단마다 끊어치며 만들어내는 웅장함이 일품이다. 다른 농악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악기인 제금을 사용하며, 법고 수도 많다. 특히 농악패와 농사꾼이 진을 짜면서 연주와 놀이가 어우러지는 놀이 판제인 농사놀이에서 을(乙)자진, 원진, 멍석말이, 방울진, 십자진, 사각진(사통백이) 등 다양한 진법을 구사하여 놀이의 총체적 효과를 극대화한다.
과장 구성
- 길맞이 징이 울리면 두레패가 무대 중앙으로 들어가고, 농악패와 자진가락을 맺는다. 이후 삼채장단으로 기수단·농부·잡색이 큰 원 안에, 농악대는 바깥에 중앙을 바라보고 선다.
- 길놀이굿 상쇠가 안으로 들어가며 멍석말이를 시작한다. 농부는 소고잽이 꼬리를 물고 따라 돌며, 멍석말이를 풀어 큰 원이 만들어지면 농부와 소고가 중앙으로 들어가 논다.
- 제1당산놀이 악기와 소고가 좌우로 벌려 상쇠를 보고 마주서고, 농부는 기수단 앞에 횡대로 섰다가 쓰레질 놀이와 논뚝 다지기를 한다.
- 사방치기와 네줄백이 당산놀이가 끝나면 큰 원을 만들어 사방치기로 전환한다. 두레패와 농악패가 두 개의 원을 만들어 전후좌우로 이동하며 연희하다가, 다시 자진가락과 삼채장단에 맞춰 네줄백이로 전환한다.
- 제2당산놀이 농부가 앞 뒤 좌우로 뒷걸음질하며 콩을 심고 풀을 베며 농사 놀이를 하고, 소고는 양상치기 후 제자리로 전환, 장단을 내주면 양 절구놀이 대형으로 전환하여 연희한다.
- 사통백이와 방울진 사방원진을 풀어 큰 원을 그린다. 원을 돌며 농부는 바깥쪽, 소고는 안쪽으로 교차하여 이동한다. 농부는 자리를 잡고 춤추며 놀고 소고는 마주보고 벅구놀이로 받는다.### 본문 경기도 중동부의 성남시는 서울의 위성도시 중 하나로 도심과 가까이 위치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특수한 목적에 따라 정책적으로 개발된 인공 도시다. 근대화에 발맞춰 빠르게 변화하고 1980년대 들어 급격하게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주목받기 시작했고, 1989년부터 42만 명 인구를 수용하는 분당 신도시 건설 계획이 추진되며 대단위 아파트 단지로 채워진 현재 모습이 됐다. 급격한 변화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당연히 그에 따른 부작용도 있었다. 드넓은 평야 지역을 중심으로 이어지던 농악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성남오리뜰농악은 과거 ‘오리뜰’ 또는 ‘부평’이라 불리던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광주군 낙생면 구미리)에서 전승되던 농악을 일컫는다. 이 마을 앞에 있던 큰 웅덩이는 겨울에도 쉽게 얼지 않아 오리가 많이 모여들었는데, 여기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또 주변 하천을 따라 오리나무로 방풍림을 조성하기도 했는데, 이 마을의 흔적은 수인분당선 오리역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수도권의 대부분 농악과 마찬가지로 두레농악·두레풍장의 특성을 띠며, 대전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웃다리농악의 흔적도 보인다. 두레는 농촌 사회의 핵심 역할을 하는 자발적 공동체였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서로 돕고, 일손이 필요할 때는 함께 일하며, 마을의 질서를 깨뜨리거나 어지럽히는 일을 막고 마을마다 두레를 표시하는 깃발도 존재했다.
성남오리뜰농악은 노동과 놀이가 결합한 두레농악으로, 시민의 화합과 만복을 기원하는 대동놀이로 이어지고 있다. 옛 시절에는 주로 쇠·징·제금·북·장구·호적으로 연주하는 육띠기나 제금·장구·호적만으로 간소하게 굿거리가락을 연주하는 삼잽이 형태였고, 건달춤으로 불리는 잡색놀음을 펼쳤다. 평야가 발달하고 농업이 성행한 지역이었기에 마을에는 김매기두레·풀베기두레·길쌈두레 등 다양한 두레가 조직됐다. 그중에서도 김매기두레에 농악이 연행됐고, 풍농을 위한 굿만 아니라 김매러 나가는 날의 행악으로도 널리 울려 퍼졌다.
두레농악과 두레풍장은 정월에 진행되는 마을굿과 마찬가지로 우리 농악의 대표 주자이자 그 시절 없어서는 안 되는 생활의 동반자였다. 여름철 농사일에는 두레패의 농악이 빠질 수 없었고, 두레의 활동에도 농악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성남오리뜰농악에는 이렇듯 농사풀이에 드러나는 놀이 형태가 잘 나타난다. 가래질·써레질·볍씨 뿌리기·모찌기·모심기·논매기·벼 베기 등 농사 과정이 모두 놀이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경기 농악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사채 가락이나 대(大) 자 진 같은 과장은 성남오리뜰농악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오리뜰농악은 1940년대부터 1970년대 말까지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뜻에서 농번기와 농한기를 가리지 않고 전성기를 누리다가 1989년 분당 신도시 개발로 한때 자취를 감췄다. 이후 성남문화원과 성남농악보존협회의 노력으로 2007년 문화체육관광부 전통예술복원사업으로 선정, 꾸준한 복원과 전승 작업 끝에 2017년 성남시 향토문화재로 지정됐다.
과장 구성
입장 : 이채를 시작으로 사채와 이채를 번갈아 치며 입장을 알린다. 판에 들어서면 크게 원을 만들어 인사를 올린다.
칠채 : 칠채-육채-마당삼채로 장단을 이어가며 흥을 돋운다. 마지막은 시작과 마찬가지로 이채로 마무리한다.
앞당산 : 대진을 바꿔 단체놀이를 진행한다. 당산벌림을 시작으로 까치버꾸·피조리놀이·버꾸놀이 등 다양한 재주가 펼쳐진다. 재주 사이에는 탈곡 장면을 보여준다.
십자진 : 악기잽이와 버꾸재비가 십(十) 자 진을 만들어 재주를 즐긴다.
달맞이진 : 대보름 날 만월을 보고 소원을 빌거나 농사의 풍흉을 점치듯 달맞이진을 펼친다.
대자진 : 악기잽이와 버꾸재비가 대(大) 자 진을 만들어 재주를 즐긴다.
쩍쩍이 : 쩍쩍이가락에 발을 맞춰가며 장단을 친다. 두레풍장에서 파생된 가락으로, ‘딱따구리가락’이라고도 불린다. 이후 가운데 원을 그리며 노는 버꾸재비를 중심으로 나머지 풍물이 둘러싸며 돌림버꾸가 펼쳐진다.
벌놀이 : 대진을 바꿔 벌놀이를 보여준다.
뒷당산 : 버꾸놀이에 이어 개인놀이와 무동놀이가 진행된다.
퇴장 :
인사굿을 올린 뒤 사채 가락에 맞춰 차례로 퇴장한다.## 문화재 지정 현황충청남도 무형문화재(2000년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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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 출처 : 『제65회 한국민속예술제』 종목소개서
- 발행일 : 2024년 10월 11일
- 발행처 : 구미시,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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