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촌상여소리(2024,경상북도)

종목 개요

구 분 내 용
참여대회 제65회 한국민속예술제
참여지역 경상북도
분야 의례
참여인원 70명
참여단체 점촌상여소리보존회
수상(단체상) 우수상(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종목소개

본문

일생의 과정에서 반드시 행하게 되는 통과의례 가운데 하나가 상례와 제사다. 이는 지역별로 다양한 양상으로 펼쳐져 왔는데, 상례에 포함된 여러 복잡한 절차는 저마다 특성을 지닌 채 전해 오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망자의 시신을 무덤까지 운반하고자 대개 상여를 이용했고, 상여를 메고 가는 상두꾼(동군)이 발을 맞추고 망자 가족들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 여러 상엿소리를 해왔다. 요령을 흔들거나 북을 치며 앞소리를 메기는 사람을 ‘요령잡이’라 하고, 상여를 맨 이들은 뒷소리를 받는다. 지역에 따라 다양한 소리와 과정이 전해지는데, 보통 발인하기 전날 밤 미리 모여 예행 연습을 하는 장부터, 장지에 도착해 하관한 후 덮은 흙을 다지는 달구소리까지 이어진다.

경상북도 문경시 점촌동은 정확한 연대와 유래를 알 수는 없으나 산기슭에 길게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긴마을’이라 불리던 것이 ‘진마을’로 전해졌다고 한다. 그러다 1829년경 옹기와 기와를 굽는 장인들이 많이 모여 점방이 늘어나고 상인의 왕래가 많아짐에 따라 ‘점마’, ‘점촌’ 등으로 불리며 지금의 이름인 ‘점촌’으로 정착했다. 이곳에는 넓은 평야가 있어 농업을 주로 삼아 삶을 영위했고, 마을 중심부를 가로질러 흐르는 모전천을 따라 낙동강까지 연결되는 넓은 곡창지대는 자랑이었다. 또 마을 뒤쪽으로는 산악 지역이 형성돼 있어 전통적으로 초상이 나면 매장을 택하곤 했다.

점촌 마을의 상례는 전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치러졌다. 초상이 나면 상포계에서 등과 삼베 3필을 제공하고, 계원별로 모금해 장례를 준비했다. 망인의 집에서 초혼을 고하면 상포계 남성 계원 중 청년들은 장례 기간 사용할 소나무를 베러 산으로 출발한다. 중년들은 빈소를 차리고 돼지를 잡았으며, 노년들은 새끼를 꼬는 등 장례용품을 만들었다. 여성 계원들은 음식을 준비하고, 작은 방에 모여 고인과 상주가 입을 수의를 짓는 일을 시작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장례에 마을 전체가 함께하던 전통은 오늘날에 이르러 거의 사라졌다. 장례 절차가 간소화하고 매장보다는 화장을 선호하는 문화가 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경 점촌동 사람들은 급속하게 사라지고 있는 장례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2009년 양수봉 어르신을 중심으로 그 시절의 농악과 농요, 상엿소리와 연행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이 마을의 전통 장례 풍습과 소리가 이어질 수 있던 것이다. 점촌 상여소리는 전체적으로 동부 민요의 특징인 메나리조의 특성이 강하며, 다른 지역에 없는 독특한 의식과 소리도 눈여겨볼 만하다.

과장 구성

하나. 초혼 : 마을의 동민이 사망하면 망인이 평소 입던 옷을 들고 지붕 위로 올라가 북서쪽을 향해 흔들며 죽음을 하늘에 고한다.

둘. 하직소리 : 발인 당일, 상주와 장례를 집도하는 이들이 관을 들고 상여까지 오는 과정. 밖에서 기다리던 동군들은 하직소리를 하며 망인을 모시고자 준비한다.

셋. 대더듬 : 발인 전날 밤 빈 상여를 메고 고인의 넋을 추모하며 상주와 절하는 것을 ‘대더듬(대도듬)’이라 한다. 동군들이 발을 맞춰 장지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피로를 줄이기 위해 사전 연습을 하는 것이며, 이 과정을 통해 장례 기간 고생한 상주와 모든 이들의 노고를 놀이로 승화하고자 한다.

넷. 삼신풀이 : 상여를 흔들어 관에 누워 있는 망인을 놀라게 하는 장. 어서 일어나 좋은 데로 환생하라는 염원을 담아 삼신할매에게 부탁드리는 의식이다. 이때 우렁차게 소리를 내 상여를 움직인다.

다섯. 출상(상주 가두기) : 상여가 대문을 나서면 상주들은 울기 마련이다. 이때 아들 형제 중 평소 말을 잘 듣지 않던 상주가 절을 하면 버릇을 고쳐야 한다며 상주를 상여 아래에 가두고 장난을 친다.

여섯. 동수나무 지나가기 : 마을 앞 동수나무와 이웃집 지붕, 산속 나뭇가지 등 상여 앙장보다 낮게 걸쳐진 장애물을 지나가는 과정이다.

일곱. 바위 지나가기 : 운상 중 바위와 장애물이 나타나면 이를 통과하기 위해 인력을 조정하는 과정이다.

여덟. 섶다리 건너기 : 먼 거리의 장지로 이동하는 과정에는 꼭 강이 흐르고 섶다리가 있기 마련이다. 동군들이 힘의 균형을 맞추며 다리를 건너간다.

아홉. 논두렁 건너기 : 논두렁을 밟은 동군은 어깨에서 줄을 벗어 반대편 동군과 상여 높이를 맞춰 이동한다.

열. 돌다리 건너기 : 작은 개울이나 습지를 지나가야 한다면 발인 하루 전 동군들이 미리 현장에 바위나 돌을 이용해 징검다리를 놓는다. 돌다리를 건너며 동군들은 발걸음을 맞추기 위해 소리를 한다.

열하나. 외나무다리 건너기 : 동군들의 단합과 균형을 보여주는 과정으로, 12명이 합심해 외나무다리를 건넌다.

열둘. 귀가소리 : 하관 시간을 맞춰야 하기에 동군들이 큰길에 도착하면 빠른소리와 걸음으로 상여를 옮긴다.

열셋. 달구소리 : 하관 후 봉분을 쌓으며 흙을 발로 다지는 소리로, 세 번 행한다

자료출처

  • 출처 : 『제65회 한국민속예술제』종목소개서
  • 발행일 : 2024년 10월 11일
  • 발행처 : 구미시,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종목소개

종목명 해설

고양시 2022년, 인구 100만 명 이상의 특례시로 출범한 고양시는 우리 역사에서 지방행정제도에 따라 여러 변화를 겪어왔다. 현재 3개구, 44개 동으로 구성돼 광역시에 버금가는 규모를 자랑하고 있으며, 국제 전시컨벤션이 가능한 공간과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공존하는 도시다.

진밭두레농악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성석동 진밭마을에서 전승되는 농악을 일컫는다. 일제 강점기 어려움을 딛고 1919년 독립만세운동을 계기로 부활했으며, 성석 진밭 두레패는 2005년 고양시 향토문화유적(무형문화유적)으로 지정됐다.

정보

지역 경기도 종목 농악 인원 45명 단체 정발초등학교 연합팀 지정 고양시 향토문화유적, 2005년

본문

광주산맥의 말단부에 위치한 고양시는 동쪽으로는 높은 산지가, 서쪽으로는 낮은 구릉과 하천 퇴적지인 곡저평야로 구성되어 있다. 북한산과 우암산을 이웃하고 서남쪽으로는 한강이 흐르니 사람이 터전을 잡고 살기에 이만한 곳이 없었을 테다. 또한 고양은 가장 오래전 농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5020년 전, 서기 2000년경에 사람이 심은 것으로 추정되는 가와지볍씨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의 재배벼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고양이 한반도 농경문화의 기원이며 한강문화권을 중심으로 벼농사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해주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한반도 농사의 기원을 품고 있는 도시답게 이곳은 농경 사회를 중심으로 문화예술도 풍부하게 발달했다. 그중에서도 진밭두레농악은 고양시 일산동구 성석동 진밭마을에서 전승되어 왔으며 농사일을 할 때 두레를 짜고, 두레패가 농사일의 흥을 돋우기 위해 연행하던 농악이다. 두레는 농촌 사회의 핵심 역할을 하는 자발적 공동체였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서로 돕고, 일손이 필요할 때는 함께 일하며, 마을의 질서를 깨뜨리거나 어지럽히는 일을 막았으며 마을마다 두레를 표시하는 깃발도 존재했다. 모내기에서 물대기, 김매기, 벼베기, 타작까지 이르는 논농사 경작을 위한 모든 과정에 두레가 함께 일했으며, 특히 많은 인력이 합심해야 하는 모내기와 김매기에는 거의 반드시 두레가 동원됐다. 물론 마을의 공동 잔치로 진행하는 풋굿이나 호미씻이와 같은 논농사 이후 놀이의 중심에도 두레가 있었다. 대체로 모내기나 추수를 마친 뒤 공동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여 음식과 술을 나누고, 농악에 맞추어 여러 연희를 곁들여 뛰고 놀면서 농사로 인한 노고를 잊고 결속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두레패와 마찬가지로 진밭두레 역시 조선 초기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침체를 겪었다. 당시 일제가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농촌의 농악과 두레를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진밭마을은 1919년 기미독립만세운동 당시 농기에 태극기를 달고 참여하였고, 이후 진밭두레와 농악패를 재결성해 100년간 전통의 원형을 보존하며 명맥을 이어왔다. 오늘날 진밭두레 농악에는 옛 농경 공동체 생활 풍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산신에게 제를 지내는 산제사에서부터 농사소리, 농사놀이, 상여소리, 회 다지소리, 지경소리, 대보름 쥐불놀이, 농악놀이까지 한 당시 지역민들의 생활문화를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진밭두레패는 변주가락을 다양하게 구사하는 일반적인 연희 농악과 다르게 기본 가락에 충실하면서도 장단마다 끊어치며 만들어내는 웅장함이 일품이다. 다른 농악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악기인 제금을 사용하며, 법고 수도 많다. 특히 농악패와 농사꾼이 진을 짜면서 연주와 놀이가 어우러지는 놀이 판제인 농사놀이에서 을(乙)자진, 원진, 멍석말이, 방울진, 십자진, 사각진(사통백이) 등 다양한 진법을 구사하여 놀이의 총체적 효과를 극대화한다.

과장 구성

  1. 길맞이 징이 울리면 두레패가 무대 중앙으로 들어가고, 농악패와 자진가락을 맺는다. 이후 삼채장단으로 기수단·농부·잡색이 큰 원 안에, 농악대는 바깥에 중앙을 바라보고 선다.
  2. 길놀이굿 상쇠가 안으로 들어가며 멍석말이를 시작한다. 농부는 소고잽이 꼬리를 물고 따라 돌며, 멍석말이를 풀어 큰 원이 만들어지면 농부와 소고가 중앙으로 들어가 논다.
  3. 제1당산놀이 악기와 소고가 좌우로 벌려 상쇠를 보고 마주서고, 농부는 기수단 앞에 횡대로 섰다가 쓰레질 놀이와 논뚝 다지기를 한다.
  4. 사방치기와 네줄백이 당산놀이가 끝나면 큰 원을 만들어 사방치기로 전환한다. 두레패와 농악패가 두 개의 원을 만들어 전후좌우로 이동하며 연희하다가, 다시 자진가락과 삼채장단에 맞춰 네줄백이로 전환한다.
  5. 제2당산놀이 농부가 앞 뒤 좌우로 뒷걸음질하며 콩을 심고 풀을 베며 농사 놀이를 하고, 소고는 양상치기 후 제자리로 전환, 장단을 내주면 양 절구놀이 대형으로 전환하여 연희한다.
  6. 사통백이와 방울진 사방원진을 풀어 큰 원을 그린다. 원을 돌며 농부는 바깥쪽, 소고는 안쪽으로 교차하여 이동한다. 농부는 자리를 잡고 춤추며 놀고 소고는 마주보고 벅구놀이로 받는다.### 본문 경기도 중동부의 성남시는 서울의 위성도시 중 하나로 도심과 가까이 위치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특수한 목적에 따라 정책적으로 개발된 인공 도시다. 근대화에 발맞춰 빠르게 변화하고 1980년대 들어 급격하게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주목받기 시작했고, 1989년부터 42만 명 인구를 수용하는 분당 신도시 건설 계획이 추진되며 대단위 아파트 단지로 채워진 현재 모습이 됐다. 급격한 변화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당연히 그에 따른 부작용도 있었다. 드넓은 평야 지역을 중심으로 이어지던 농악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성남오리뜰농악은 과거 ‘오리뜰’ 또는 ‘부평’이라 불리던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광주군 낙생면 구미리)에서 전승되던 농악을 일컫는다. 이 마을 앞에 있던 큰 웅덩이는 겨울에도 쉽게 얼지 않아 오리가 많이 모여들었는데, 여기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또 주변 하천을 따라 오리나무로 방풍림을 조성하기도 했는데, 이 마을의 흔적은 수인분당선 오리역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수도권의 대부분 농악과 마찬가지로 두레농악·두레풍장의 특성을 띠며, 대전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웃다리농악의 흔적도 보인다. 두레는 농촌 사회의 핵심 역할을 하는 자발적 공동체였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서로 돕고, 일손이 필요할 때는 함께 일하며, 마을의 질서를 깨뜨리거나 어지럽히는 일을 막고 마을마다 두레를 표시하는 깃발도 존재했다.

성남오리뜰농악은 노동과 놀이가 결합한 두레농악으로, 시민의 화합과 만복을 기원하는 대동놀이로 이어지고 있다. 옛 시절에는 주로 쇠·징·제금·북·장구·호적으로 연주하는 육띠기나 제금·장구·호적만으로 간소하게 굿거리가락을 연주하는 삼잽이 형태였고, 건달춤으로 불리는 잡색놀음을 펼쳤다. 평야가 발달하고 농업이 성행한 지역이었기에 마을에는 김매기두레·풀베기두레·길쌈두레 등 다양한 두레가 조직됐다. 그중에서도 김매기두레에 농악이 연행됐고, 풍농을 위한 굿만 아니라 김매러 나가는 날의 행악으로도 널리 울려 퍼졌다.

두레농악과 두레풍장은 정월에 진행되는 마을굿과 마찬가지로 우리 농악의 대표 주자이자 그 시절 없어서는 안 되는 생활의 동반자였다. 여름철 농사일에는 두레패의 농악이 빠질 수 없었고, 두레의 활동에도 농악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성남오리뜰농악에는 이렇듯 농사풀이에 드러나는 놀이 형태가 잘 나타난다. 가래질·써레질·볍씨 뿌리기·모찌기·모심기·논매기·벼 베기 등 농사 과정이 모두 놀이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경기 농악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사채 가락이나 대(大) 자 진 같은 과장은 성남오리뜰농악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오리뜰농악은 1940년대부터 1970년대 말까지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뜻에서 농번기와 농한기를 가리지 않고 전성기를 누리다가 1989년 분당 신도시 개발로 한때 자취를 감췄다. 이후 성남문화원과 성남농악보존협회의 노력으로 2007년 문화체육관광부 전통예술복원사업으로 선정, 꾸준한 복원과 전승 작업 끝에 2017년 성남시 향토문화재로 지정됐다.

과장 구성

  1. 입장 : 이채를 시작으로 사채와 이채를 번갈아 치며 입장을 알린다. 판에 들어서면 크게 원을 만들어 인사를 올린다.

  2. 칠채 : 칠채-육채-마당삼채로 장단을 이어가며 흥을 돋운다. 마지막은 시작과 마찬가지로 이채로 마무리한다.

  3. 앞당산 : 대진을 바꿔 단체놀이를 진행한다. 당산벌림을 시작으로 까치버꾸·피조리놀이·버꾸놀이 등 다양한 재주가 펼쳐진다. 재주 사이에는 탈곡 장면을 보여준다.

  4. 십자진 : 악기잽이와 버꾸재비가 십(十) 자 진을 만들어 재주를 즐긴다.

  5. 달맞이진 : 대보름 날 만월을 보고 소원을 빌거나 농사의 풍흉을 점치듯 달맞이진을 펼친다.

  6. 대자진 : 악기잽이와 버꾸재비가 대(大) 자 진을 만들어 재주를 즐긴다.

  7. 쩍쩍이 : 쩍쩍이가락에 발을 맞춰가며 장단을 친다. 두레풍장에서 파생된 가락으로, ‘딱따구리가락’이라고도 불린다. 이후 가운데 원을 그리며 노는 버꾸재비를 중심으로 나머지 풍물이 둘러싸며 돌림버꾸가 펼쳐진다.

  8. 벌놀이 : 대진을 바꿔 벌놀이를 보여준다.

  9. 뒷당산 : 버꾸놀이에 이어 개인놀이와 무동놀이가 진행된다.

  10. 퇴장 :

인사굿을 올린 뒤 사채 가락에 맞춰 차례로 퇴장한다.## 문화재 지정 현황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2011년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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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 출처 : 『제65회 한국민속예술제』 종목소개서
  • 발행일 : 2024년 10월 11일
  • 발행처 : 구미시,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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