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농악(2020,강원도)

종목 개요

  • 비경연대회

종목소개

외세에 항전한 사람들

‘춘천’이라는 도시의 느낌은 어쩐지 따뜻하다. ‘봄’의 의미를 담고 있어서일까, 아니면 많은 이들이 새싹이 돋아날 즈음 여행지로 택하는 곳이어서일까. 고려 태조 23년 ‘춘주’라는 이름에서 유래해 현재 강원도 춘천시가 된 이곳은 봄이 먼저 도래하는 곳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봄 풍경 덕에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고려 중기 이곳은 외부 세력에 의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거란족·몽고 등 외세가 자주 침입하던 지역이었다. 당시 몽고군에 대항해 춘주성, 즉 오늘날의 봉의산성에서 사람들이 항전한 전적이 그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지역의 사람들은 일상에서는 농·상업 등 본업을 하고, 전시에는 군역에 종사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전시에 농군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했고, 그 방법의 하나로 군악이 자연스레 이곳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춘천 지역에 널리 전수된 전시용 진법과 훈련에 사용되던 악무는 시간이 점차 지나며 농군악으로 발전하게 됐다.

‘춘천농악’의 시작

다른 지역의 농악과 마찬가지로 춘천 지역의 농악 역시 근대 사회로의 전환 과정에서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잊혔다. 그러다 1960년대 들어 전통을 발굴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춘천농악을 재발견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벌어졌다. 춘천농악의 뿌리는 춘천 내에서도 고룬·금병·사암리·우두 등 마을을 중심으로 연행되던 대동굿놀이(마을굿)와 지신밟기, 농군악에서 찾는다. 수시로 진행된 농상계, 2월에 연행된 지신밟기, 7월 백중날의 호미씻기, 삼복에 행하던 복놀이 등 세시풍속을 통해 농악의 존재와 전승 양상을 찾고자 한 것이다. 춘천농악은 지리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강원도 농악 가운데서도 영서농악(원주·횡성·춘천 지역의 농악)의 특징을 갖고 있다. 강원민속예술축제(강원도민속예술경연대회)의 기록을 살펴보면, 춘천에서도 마을 이름을 따서 출전하던 농악이 2015년과 2017년부터 지역 단위 이름으로 출전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춘천농악은 마을 단위의 석사농악·우두농악·신북천전3리농악·서면월송1리농악·신북지암리농악·금병농악 등이 지닌 특색을 아우른다. 복색은 농사일을 하는 이들의 기본 복장인 민복 상하의 한복에 까만 조끼를 걸쳐 입는다. 은은한 황토색을 지닌 민복과 북·장구는 지역의 황토를 이용해 제작한 것이다. 춘천 지역의 싸리꽃(싸리여섯꽃)을 형상화해 청색·황색·홍색 등 삼색으로 구성한 고깔은 이곳만의 특징. 놀음은 주로 벅구재비에 의해 이뤄지며, 진풀이 형식은 군사농악(판굿)의 것을 따른다. 두레 형식을 띠지만 농군악인 탓에 각을 잡듯이 정확하고 반듯하게 엮었다 풀어지는 대열을 주목할 만하다. 경기 농악의 특징으로 꼽히는 길군악 칠채장단은 강원도 농악에도 대부분 등장하는데, 춘천농악의 팔만금사진에서도 발견된다. 1998년 설립된 춘천농악보존회는 지역 농악의 복원과 계승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춘천농악의 정식 기록으로 꼽히는 1939년 경춘선 철도 개설 기념 농악경연대회 자료와 영상 및 구술 채록 등을 통해 복원의 틀을 세웠다. 춘천의 지역민 40여 명이 모여 만들어내는 풍물 소리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를 모은다.

주목! 이 장면

일반적으로 농악이라면 갖추는 기본 복식이 있지만, 춘천농악에는 다른 점이 있다. 황토빛의 민복과 악기 가죽, 홍자색 싸리꽃을 따서 만든 삼색 고깔, 마을 최고의 기능에게 전해 내려오는 기수건 등이다. 상쇠의 신호에 맞춰 부쇠·종쇠와 소고재비·무등을 불러내는 앞마당과 차례로 개인놀음을 펼치는 뒷마당을 눈여겨볼 것.

장면 구성 자세히 보기

  1. 입장굿 대형을 갖추고 상쇠·치배·무등(무동)·잡색 순으로 입장한다.
  2. 일원진/인사굿 일원진을 만들고, 인사굿을 올리며 마당놀이의 시작을 알린다.
  3. 을자진/태극진 일원진에서 을자진을 만들고, 다시 태극진으로 풀어내다 원진을 만들며 기본 장단을 이어간다.
  4. 이원진/돌림벅구 벅구를 중심으로 이원진을 만드는 과정. 원 안쪽에 벅구가 들어와 작은 원을 형성하고 나머지 인원은 바깥쪽에 큰 원을 만들어 벅구 장단을 뒷받침한다.
  5. 앞마당 마을 입구에 있는 당산을 형상화한 앞당산을 세우고 앞마당놀음을 펼친다.
  6. 팔만금사진 춘천농악의 특징이 잘 드러난 장면으로, 칠채를 치며 대열에 변화를 준다.
  7. 삼원진 다시 중앙으로 이동한 뒤 삼원진을 만들고, 가락을 빠르게 몰아간다.
  8. 길군악 삼원진을 유지하며 길군악을 연주한다.
  9. 사방치기 상쇠의 신호에 맞춰 삼원진을 풀고 5열 종대를 갖춘다.
  10. 뒷마당 앞마당과 대비되는 장면으로, 뒷당산놀음을 펼친다. 대열은 동일하게 정렬하되 개인놀음을 펼치며 기량을 선보인다.
  11. 멍석말이 뒷마당을 풀고 삼원진을 갖춘 뒤 벅구재비 위로 무등(무동)과 화동이 올라가 놀음을 벌인다.
  12. 대동놀이/퇴장 농악의 마무리를 알리며 관객과 흥겹게 판을 정리한다. 인사굿을 올리고 퇴장한다.

인물 이야기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농악을 계승하며” ___ 심재랑(춘천농악보존회 단장, 춘천농악 연출 겸 상쇠)

춘천농악보존회의 단장이자 춘천농악을 이끄는 상쇠로서 우리 농악을 발전시키고 계승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가운데 한국민속예술제에 강원도 대표로 참가하게 돼 영광입니다. 이번 축제에는 10대부터 70대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춘천농악보존회 회원 49명이 참여합니다. 모두 춘천시에 거주하며 우리 민속예술을 사랑하는 지역민으로, 무척 값진 일이라 생각합니다. 농악은 오랜 세월을 거쳐 현재까지 연행되면서 전통예술뿐만 아니라 대중문화로서도 그 기반을 확고히 다진 민속 연희입니다. 제의성과 놀이성, 그리고 연극성까지 갖추고 있고, 집단으로 향유된다는 점도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2014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지요. 춘천은 고려 시대부터 군사 요충지로, 두레패의 농경 생활과 관련한 농악이 계승됐습니다. 대대로 내려온 전시용 진법을 토대로 춘천농악의 진풀이 역시 군사농악의 판굿 형식을 닮아 있고요. 팔만금사진을 보면, 좌우로 이동하면서 적을 한가운데로 몰아 원진으로 둘러싸 가두는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인사굿·모임굿·덩덕쿵 등 12가락과 입장굿·일원진·을자진 등 12진으로 구성된 것이 다른 지역의 농악과 구별되는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하고 화려한 고깔 역시 춘천농악의 특색입니다. 대대로 전수된 복식 역시 이번 무대에서 보여드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춘천농악의 이름으로 처음 참가하는 한국민속예술제인 만큼 모든 역량을 기울이겠습니다.

참고 문헌

강갑수(금병농악 연행자) 구술 채록(2013. 12. 3). 김정헌, 「강원도농악의 미적 특성」, 『한국전통음악학』 12, 한국전통음악학회, 2011, 269~288쪽. 이은주, 「기록을 통해 본 춘천농악의 역사적 존재 양상 및 전승 양상」, 『아시아강원민속』 32, 아시아강원민속학회, 2019, 57~97쪽.

문화재 지정 현황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농악 (2014.11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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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 출처 : 『제61회 한국민속예술제』 백서
  • 발행일 : 2020년 12월 30일
  • 기획 :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사진자료

동영상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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