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무을농악(2020,경상북도)

종목 개요

  • 비경연대회

종목소개

문화 도시에서 공업 도시로

누군가는 신라 시대의 역사를 기억하고, 또 누군가는 공업기지로 인식하는 도시. 경상북도 서남부 대구광역시와 인접한 구미는 국내 최대의 내륙 산업단지를 갖춘 곳이다. 신라 시대에 처음으로 불교가 전해졌고, 조선 시대에는 성리학이 꽃을 피운 문화적 도시였으나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물결에 힘입어 국가산업단지가 생겨났고, 이후 수출을 위주로 한 국가적 성장에 크게 이바지했다. 구미시를 대표하는 전통문화라 해도 과언이 아닐 무을풍물은 현재의 무을면에 자리한 수다사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다. 9세기경 신라 진감국사가 연악산 상봉에 하얀 연꽃 한 송이가 핀 것을 보고 연화사를 창건, 오늘날 수다사로 이어진 곳이다. 약 300여 년 전, 이 절의 스님 정재진이 꿈에서 도깨비와 장난을 친 것을 소재로 농악 가락을 만들어 마을로 전파했다고 전해진다. 이를 더러 뭇사람들은 “정재진 나고 메구 나고, 엄복동이 나고 자동차 났으며, 안창남을 위해 비행기가 나왔다”고 할 정도였다고. 이후 이 가락은 마을로부터 전국으로 확산하며 전국의 농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구미 무을농악’의 시작

스님으로부터 전해진 가락을 이은 건 이군선 상쇠였다. 그는 이 가락을 집대성해 지역의 대표 민속예술로 자리 잡도록 했다. 당시 많은 이들이 그에게 쇠를 배우기 위해 무을을 찾았고, 무을농악의 가락은 널러 퍼져 나갔다. 그중 그에게 배운 이남훈 상쇠가 김천에서 재정립한 것이 금릉빗내농악이다. 무을면은 전형적인 농촌이지만, 무을농악은 일반적인 농사굿이 아닌 군사굿의 형태를 취한다는 점과 구미·김천 일대에서 전승된 농악을 바탕으로 전승 계보가 뚜렷하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상쇠의 계보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군악의 영향을 받아 전체적인 진행이 빠르고 경쾌하며, 역동적이다. 또한 대형이 다양하고 각각 개성을 갖고 있어 다른 농악과는 다른 신명을 북돋는다. 그중 특기할 만한 것이 북가락인데, 웅장하면서도 장쾌한 울림과 동작이 경상도 풍물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양북의 형태로 연주하며, 그중에서도 북잽이와 소고잽이의 놀음을 주목할 만하다. 전형적인 전투농악인 탓에 누구나 무을농악의 현장에 있다면 흥을 감추지 못하고 함께 들썩이게 될 것이다. 풍물의 구성은 쇠(4명)·징(4명)·북(8명)·장구(8명)·소고(12~16명)·잡색(3명)·기수(4명)이며, 질굿으로 시작해 전투적인 진풀이(진굿)까지 총 열두 마당으로 구성된다. 풍물이 갖추고 등장하는 고깔도 독특하다. 사찰에서 전승된 무을농악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거북이 형태의 머리 위에 크고 작은 연꽃으로 꽃봉오리와 범나비가 화려하게 장식돼 있다.

주목! 이 장면

대부분의 지역 농악이 농사굿으로 이뤄진 것에 반해 구미 무을농악은 농악의 삼대설을 모두 갖추고 있다. 절(불교설)에서 시작돼 마을 농민들로부터 이어졌고, 놀이는 진굿(전쟁굿)으로 이뤄져 전반적인 진행 속도가 매우 빠르고 경쾌하다. 특히 꽹과리를 박아치는 타법으로 힘차고 강렬한 정저굿과 품앗이 부분, 지역색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판굿의 북놀음과 소고놀음을 집중해서 보면 좋을 것이다.

장면 구성 자세히 보기

  1. 질굿 마을과 마을 사이를 이동하거나 일하러 가기 위해 나서면서 치던 가락으로, 굿거리와 빠른 가락으로 이뤄진다. 태극 모양을 그리며 입장해 관객들에게 인사를 올린다.
  2. 마당닦기(반주굿) 싸움의 모습을 따서 만든 장면으로, 원형으로 만든 진 안쪽에 적을 포위한 다음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적을 무찌르는 모습을 한다.
  3. 정저굿 싸움을 시작하기 전, 대진을 만들고 방어를 준비한다.
  4. 엎어베기 전쟁 중 적의 화살과 날아오는 돌을 피하는 동작, 다시 공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놀이.
  5. 판안다드래기(소리굿) 판굿의 한 장면으로, 가락을 치면서 앞소리와 뒷소리를 주고받는다. 소고잽이는 가락 치기와 앉았다 서기를 반복하며 기세를 자랑하고, 나머지 치배들과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원을 돌며 가락을 이어간다.
  6. 기러기굿 기러기가 나는 모양처럼 팔을 양쪽으로 벌린 뒤 옆으로 뛰며 춤을 춘다. 원을 돌며 춤을 추다 쇠가락에 맞춰 방향을 전환한다.
  7. 품앗이 상쇠와 부쇠가 가락을 주고받으며 대원들을 점검한다. 신명 나게 가락을 치다가 “허허허허” 소리를 내며 장면을 전환한다.
  8. 쌍둥이굿 상쇠의 신호에 따라 큰 원을 이루던 치배들이 대진을 전환한다. 원을 그리면서 돌다가 상쇠의 신호에 춤을 추며, 두 명씩 작은 원을 만들어 적을 교란하고자 하는 장면이다. 자진모리에 맞춰 다음 장면을 준비한다.
  9. 오방진 동·서·남·북과 가운데에 총 다섯 개의 원을 만든다.
  10. 판굿 다시 바깥쪽으로 큰 원을 그리며 오방진을 풀고, 대원들은 각자 개인놀이를 펼치며 서로의 기량을 자랑한다. 쇠놀이·북놀이·장구놀이·징놀이·열두발상모놀이·오방기놀이가 진행된다.
  11. 11자진 나란히 두 줄로 선 상태에서 쇠가락이 바뀌며 진풀이를 진행한다. 소고잽이는 가락에 따라 앉았다 서기를 반복하며 여전한 기세를 자랑하고, 쇠가락에 맞춰 북과 장구가 풍물을 더한다.
  12. 진풀이 상쇠와 종쇠가 원형 대진을 만들면 농기를 중심으로 진을 말았다가 풀고, 다시 영기를 중심으로 8자 형태의 진을 말았다 푼다.

인물 이야기

“경상도 내륙 지방 농악을 계승하며” ___ 박정철(구미 무을농악 연출자 및 상쇠, 구미농악단장)

구미농악단은 전문 예술인들과 일반 직장인들이 어우러져 있는 단체입니다. 그중에서도 예술인 단원들은 구미 무을농악의 전승과 보존을 위해 구미시 읍·면·동의 농악단 교육을 맡고 있으며, 각 학교에서 전수 교육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30년간 무을농악 전수학교로 활동하고 있는 오상고등학교 농악 동아리를 통해 다수의 농악 전공자를 배출했고, 이는 지금의 무을농악을 이어오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에는 쇠·징·북·장구·소고 등 치배와 잡색·기수로 구성된 구미농악단 50여 명 단원들이 단합해 새롭게 도전하는 마음으로 출전합니다. 무을농악의 가치를 알리고 활성화하기 위한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른 지역의 농악과 달리 무을농악은 전쟁굿을 중심으로 열두 마당이 뚜렷하게 짜여 있습니다. 특히 판굿이 다채롭게 구성되는데, 이 특징을 보여주고자 웅장하고 역동적인 양북놀음과 날렵한 춤사위가 뛰어난 소고놀음을 중점적으로 판을 짰습니다. 경상도 풍물의 특징인 북의 역할을 뚜렷하게 각인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미 무을농악은 경상도 내륙 지방의 전형적인 풍물굿으로, 상쇠 계보가 명확히 전해지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 풍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15년에 한 차례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수상한 바 있지만, 이번 대회에 다시금 경상북도를 대표해 참가하는 만큼 부담감도 있고 마음도 다소 무겁습니다. 하지만 구미 무을농악을 전국에 알릴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단원들이 땀 흘려 고생한 만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임하겠습니다.

참고 문헌

구미시 편, 「무을풍물단」, 『구미의 무형문화재(전통문화시리즈 1)』, 2001. 박혜영, ‘금릉빗내농악’, 한국민속대백과사전(folkency.nfm.go.kr). 석대권, ‘무을풍물’,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grandculture.net).

문화재 지정 현황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구미 무을농악 (2017.01지정)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농악 (2014.11등재)

관련링크

자료출처

  • 출처 : 『제61회 한국민속예술제』 백서
  • 발행일 : 2020년 12월 30일
  • 기획 :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사진자료

동영상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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