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달리농악(2020,울산시)

종목 개요

  • 비경연대회

종목소개

공업도시의 성장에 가려진 민속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업도시 울산은 1960년대 특정공업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경상남도 울산은 1997년 광역시로 승격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공장이 대거 입주하면서 1990년대 후반 울산은 국내 도시 가운데 1인당 GDP 최고 수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공업도시로서 국가 발전에 기여한다는 인상이 강했으나 그로 인한 부작용도 있었다. 개발에 맞선 지역 토박이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으며, 지역 향토문화의 전승은 단절됐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울산을 바라보는 관점도 변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태화강 살리기 운동을 비롯해 개발로 인해 파괴된 환경을 복구하기 위한 도시 생태 복원에 힘쓰고 있는 것. 실제로 울산의 중심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태화강은 시민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최근 순천만 국가정원에 이어 제2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울산남구문화원은 흔적만 남은 달리마을 지역의 농악의 형태를 복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울산달리농악’의 시작

울산달리농악은 그러한 흐름 속에서 싹을 틔웠다. 달리농악은 1960년대 초까지 전형적인 농경지이던 달리마을(남구 달동)에서 성행한 노작농악(두레농악)이다. 그러나 급격한 공업화와 함께 무분별한 도시 개발이 이뤄지면서 농촌은 물론 그 문화까지 해체됐고, 농악을 비롯한 민속놀이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소멸이 아니라 그 흔적까지 전멸한 수준. 이에 울산에 애정을 가진 이들이 모여 ‘울산의 농악’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머리를 맞댄 끝에 달리농악의 뿌리를 찾기로 뜻을 모았다. 달리마을의 농악 역시 대부분 지역과 유사한 형태로 연행된 것으로 기록된다. 두레나 추수 후 진행된 농경 행사, 집안과 마을의 안위를 위한 지신밟기에 늘 함께했다. 달리농악도 각종 문헌을 근거로 삼아 매구놀이를 효시로 본다. 조선 중기부터 1960년대까지 이어온 매구놀이는 풍년과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서낭당 제실에 골맥이 할매를 모시고 동제를 지낸 데서 유래했다. 이후 마을의 대소사를 해결하기 위해 기금을 마련하거나 정초에 집집을 돌며 안녕을 빌어주는 지신밟기를 통해 걸립굿 형태의 두레농악이 발전했다. 농경사회에 빠질 수 없었던 행위가 농악이라는 점에서 울산달리농악의 구성 역시 달리마을의 세시풍속과 농경 행위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달리마을의 정월 대보름 동제와 타작마당에서의 탈놀음, 음력 6월의 용신제와 농신제 등에서 그 형태를 찾고자 했다. 경상도 권역에 위치한 마을이기에 이곳 지역 민속예술이 지닌 특색 또한 대부분 갖고 있다. 대체적인 분위기는 빠른 장단에 맞춰 쉬지 않고 힘차게 흥을 돋운다. 또한 경상도 농악 고유의 버꾸놀이와 노작 형태의 두레놀이가 포함돼 있어 소고와 북을 활용한 동작이 다채롭다.

주목! 이 장면

울산달리농악은 복원의 역사가 짧은 대신, 연행자들이 젊고 활기차다는 것이 특징이다. 2016년 단체를 창단한 만큼 의욕이 넘치며, 장면 구성과 동작 역시 주목할 만하다. 과거의 전통과 현대의 농악이 어떻게 한자리에서 만나는지, 전체 구성과 흐름을 함께 즐기면 좋을 것.

장면 구성 자세히 보기

  1. 서낭당굿 본 공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마당에 치배들을 모아 다드래기로 시작을 알린다. 매구를 치기 전 서낭당에 고하는 과장으로, “내리소 내리소 서낭서낭 내리소”라고 외치며 시작한다.
  2. 질쇠 원을 그리며 공연 마당으로 입장한다. 서낭당굿을 마치고 큰 새미(우물)가 있는 장소로 빠르게 이동한다.
  3. 새미굿 우물가에 새끼줄을 치며 액운을 막는 과장이다. 두 개의 원무를 형성하고 차례로 반시계·시계·반시계 방향으로 크게 돌면서 새미굿을 펼친다.
  4. 마당굿 일종의 성년식을 표현한 과장으로, 채비들이 각종 재주를 부리며 낯을 드러낸다. 자즌덧배기장단에 다양한 진풀이와 화려한 몸동작을 선보인다.
  5. 등걸이굿 벽사진경의 의미를 담은 매귀악 과장.
  6. 두레굿 농청놀이 장면으로 논매기 작업을 형상화했다. 4열 횡대로 대진을 정렬한 뒤 밀고 당기며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선보인다.
  7. 오방굿 오방의 지신을 누르는 오호지신굿을 담은 과장. 태극진을 감고 “얼화사 지신요 오호지신 눌리자”를 외치며 풍년을 기원한다.
  8. 덧배기 풍년에 감사하고 서로 축하하며 한바탕 멋들어지게 춤추고 논다. 고된 농사의 노고를 달래는 모습이 역력하다.
  9. 호허굿 대진을 사각형으로 바꿔 논두렁을 다지듯 자즌발과 큰 굴림으로 땅을 밟는다.
  10. 영산놀이 개인의 기교를 자랑하는 장면으로, 북춤과 들벅구놀이, 열두발상모가 차례로 신명 나는 놀이를 벌인다.
  11. 홀치굿 대동놀이를 펼쳐 치배와 구경꾼이 함께 노는 마당.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 축제 현장을 더욱 달군다.
  12. 매귀굿 모든 판굿을 마무리하고 퇴장하며 액운을 날려 보낸다.

인물 이야기

“올해, 당당히 울산 대표로 경연에 참여합니다” ___ 김세주(달리농악보존회 대표, 울산달리농악 연출자)

저희는 지난해 한국민속예술축제에 유일하게 ‘신규’로 참여한 팀입니다. 60회 의미가 깊을 때 가장 첫 순서로 출전했지요. 올해는 지역 예선인 처용문화제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우승하게 돼 제61회 한국민속예술제 경연에 참가하게 됐습니다. 지난해에는 신규 팀이라 경연에서는 제외됐지만, 올해는 당당히 자웅을 겨룰 수 있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울산은 1960년대 들어 급격하게 공업화가 진행되면서 본래 존재하던 문화예술 전반이 사라졌습니다. 다시 찾기 힘들 정도로 한순간에 소멸한 것이지요. 울산이 경상남도에서 광역시로 독립한 지 20년이 지났는데 시도무형문화재가 거의 없어요. ‘문화 불모지’라고들 그래요. 울산에도 농악이 있고, 농악을 했던 사람들이 있는데 왜 우리는 울산의 농악을 할 수 없는 걸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우리 것을 찾자’ ‘우리 것을 만들자’ 하는 마음으로 2005년부터 울산의 농악에 대한 자료 수집과 채록을 시작했고, 2016년에 울산농악연구회를 결성했어요. 그렇게 마음을 모은 30여 명과 함께 그다음 해에 울산달리농악보존회를 만들었습니다. 현재는 50여 명의 회원이 주축이 돼 학술행사를 열기도 하고, 전국농악경연대회에 출전하거나 초청 공연 무대에 서며 달리농악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한국민속예술제 출전을 계기로 울산달리농악을 전국에 알릴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됩니다.

참고 문헌

최흥기, 「울산 달리마을 풍속에 따른 농악의 갈래와 구성에 관한 제시」, 『정신문화연구』 40(4), 69-101, 한국학중앙연구원, 2017. 최흥기·최호곤·오현정, 「울산달리농악의 연행 현황과 판제」, 『공연문화연구』 39(0), 835-861, 한국공연문화학회, 2019.

문화재 지정 현황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농악 (2014.11등재)

관련링크

자료출처

  • 출처 : 『제61회 한국민속예술제』 백서
  • 발행일 : 2020년 12월 30일
  • 기획 :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동영상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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