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정보
고성오광대(2010청소년,경상남도)
종목 개요
구 분 | 내 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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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대회 | 제51회 한국민속예술축제 및 제17회 전국청소년민속예술제 |
참여지역 | 경상남도 |
분야 | 민속극 |
참여단체 | 칠성중학교 |
수상(단체상) | 은상 (충남도지사상) |
수상(개인상) | 연기상 (이상섭,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
종목소개
고성오광대는 경상남도 고성군에서 정월대보름에 행하는 탈놀이로,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어 있다. 탈을 쓰고 태평소, 북, 장구, 꽹과리, 징 등의 음악 반주에 맞춰 춤을 추며 대사를 주고받는 민속 연희[演戱]라고 할 수 있다.
고성오광대는 다른 민속가면극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가면을 쓴 연희자가 춤을 추고 동작을 하면서 대화와 노래를 곁들여 진행하는 탈춤놀이다. 춤은 굿거리장단에 따라 덧뵈기를 춘다. 남사당의 탈놀음을 덧뵈기라 부르는 것처럼 탈놀음 자체를 일컫기도 하지만, 덧뵈기춤은 영남 지방의 대표적인 토속무[土俗舞]로 일자[一字] 사위와 활개춤이 주류를 이루며, 한 번씩 배기는 허튼춤이다. 등장인물 일동이 추는 춤은 과장을 나누는 구실을 하면서 주제가 다른 과장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구실도 한다.
동작은 등장인물 성격에 맞게 연기하는데, 대체로 몸짓의 폭이 큰 과장된 표현을 한다. 대화는 흔히 재담[才談]이라 하며, 재치와 풍자적으로 가사를 고쳐 부르기 위주로 한다. 대사는 비교적 고정적인 구비관용구[口碑慣用句]와 상황에 따라 변하는 즉흥적인 말로 구성되어 있다. 연희 공간이 원형이라, 등장인물이 대화를 할 때는 빙 돌면서 같은 말을 몇 번 되풀이하는 경우가 잦아 반복적인 대화 표현이 많다. 노래는 사건의 줄거리와 관계가 있는 것도 부르고, 극적 분위기를 돋우는 것도 있다.
유래와 관련한 몇 가지 구전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1900년경 통영오광대 공연을 보고 고성 사람들이 재미있으니 우리도 한번 해보자고 해 시작했거나, 통영오광대를 아는 사람이 고성에 와서 가르쳐 줬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남촌파 인사들이 창원오광대에서 배웠다는 것이다. 어느 것이 맞던 고성 주변에서 연희했던 오광대의 영향으로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초반까지는 음력 정월대보름날에 주로 연희했다. 정월 초순에 일심계원[一心契員]들이 농악대를 편성해 고성 읍내의 각 가정과 상점을 돌며 걸립을 하면서 오광대놀이 비용을 마련했다. 공연하기 7~8일 전에는 도독골 산기슭에 있는 잔디밭에서 오광대 탈놀이 연습을 했다. 마을 전체의 행사이면서 구나의식[驅儺儀式]과 축원의 의미를 지닌 일종의 종교적 행사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놀이 당일 저녁, 오광대패가 풍물을 울리며 읍내를 한 바퀴 돌고, 탈놀음 장소인 고성장터 넓은 마당으로 가서 밤새워 놀았다. 이 밖에 객사마당이나 무량리 잔디밭에서 놀이를 한 적도 있었다.
고성오광대도 다른 오광대와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줄거리로 된 연희가 아니라, 주제가 다른 몇 개의 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과장의 주제는 다른 오광대와 같으나, 앞뒤에 오방신장무[五方神將舞] 또는 사자무[獅子舞]와 같은 벽사진경[辟邪進慶]의 의식무가 없고, 주로 오락성이 강한 과장들만으로만 구성되는 것이 특징이다.
제1과장 ‘문둥북춤’ 불구의 문등광대가 굿거리장단에 맞춰 문등탈을 쓰고 등장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통곡한다. 문둥북춤의 여러 동작은 슬픔과 기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삶의 중요한 부분들도 보여준다. 문둥북춤의 특징은 한을 표현하는 전반부와, 한의 승화를 표현하는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천형의 한을 드러내는 슬픔의 춤이 전반부를 이룬다면, 북과 북채를 쥔 채 한을 승화하는 기쁨의 춤이 후반부라고 할 수 있다.
제2과장 ‘오광대놀이’ 문등광대가 퇴장하면 공연마당에 둥글게 앉아 있던 양반 광대들이 덧뵈기 장단에 맞춰 원 양반을 선두로 하여금 마당 안으로 뛰어들면서 모두 군무를 춘다. 특징적인 춤의 형태로는 배김새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양반들과 말뚝이가 함께 어우러지는 배김새는 힘차면서도 조화롭다. ‘고개사위’하면서 가운데를 향해 ‘안쪽보기’ 사위를 취하기도 하고, 바깥을 향해 ‘앉아배기기’를 취하기도 하는데, 이 과장에 정적이면서 동시에 동적인 우리 춤의 정수를 보여준다. 양반춤은 고성오광대가 민속 연희에서 보여주기 위한 공연으로 변화하고 있는 사실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경우다. 말뚝이춤은 양반춤보다 보폭이 크고, 고개사위도 크다. 그래서 삶의 힘이 넘치는 존재로 그려진다.
제3과장 ‘비비’ 제2과장에서 양반 여럿이 흥겹게 놀고 있을 때, 이 세상에서 무엇이든지 다 잡아먹는 괴물 비비가 나타나면 양반들은 혼비백산해 도망친다. 그중 한 양반을 붙들고 마음대로 놀려대며 혼을 내는데, 비비가 갖은 횡포로 평민들을 괴롭히는 양반을 위협 조롱하면서 양반들의 등쌀에 쌓였던 울분을 풀게 하는 과장이다.
제4과장 ‘승무’ 승려의 파계적 행동을 보여주는 과장이다. 선녀(소무에 해당)가 먼저 등장해 춤을 추고 있으면, 승려가 등장해 이어 선녀를 유혹해 함께 퇴장한다. 유혹하려는 존재가 먼저 등장해 유혹의 함정, 즉 분위기를 형성한 다음 유혹의 대상이 되는 존재가 등장해 분위기에 휘말리는 개연적 공연이 되게 했다. 대사는 없고 승려의 춤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제5과장 ‘제밀주’ 저밀주(첩), 큰어미(할미), 시골영감 사이의 갈등이 그려지는 과장이다. 큰어미는 물레를 잣는 등 노동으로 평생을 살아왔음을 보여준다. 시골 영감이 가출했다가 귀가하면서 저밀주를 데려온다. 저밀주가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큰어머니 손에서 떨어져 죽는다. 이를 본 저밀주가 큰어미를 떠밀어 죽게 한다. 이어 큰어미의 상여가 나간다. 큰어미 탈의 좌측 색깔은 녹색이고 우측은 고동색이다. 녹색 부분의 입은 위로 올라갔고, 고동색 부분의 입은 아래로 쳐졌다. 녹색은 젊음과 생산을, 고동색은 죽음을 의미한다. 고성오광대 공연에 철학적 깊이를 더한 과장이라 할 수 있다.
고성오광대는 그 내용과 형식 면에서 부단히 변화를 거쳐 왔다. 영남 지역 탈놀이의 역사가 대개 100여 년인데, 그 근간을 유지한 채 현재의 모습을 완성한 것은 대략 1970년대를 넘어서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고성오광대는 그 형식과 과정에 천재적 예인 몇몇이 크게 이바지했으며, 그들의 부단한 노력은 존경할 만하다. 노력의 결과로 춤도 다양하며 멋들어진다. 완성도 높은 공연물은 그 안에 반드시 개연적 연결고리를 포함한다.
고성오광대는 과장 간의 개연적 연결고리가 없는 대신, 오광대 전체를 아우르는 춤, 반주, 대사, 노래의 연결이 조화롭고 삶에 대한 고뇌를 담고 있다. 민속연희적 요소보다 공연적 요소가 강화되고 있지만, 춤의 고을, 고성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문화적 연결고리의 역할은 변함없다.
문화재 지정 현황
-국가무형문화재 고성오광대 (1964.12지정)
관련링크
자료출처
- 출처 : 『한국민족예술축제60년. 변화와 도약 해적이』
- 발행연도 : 2019.12.31
- 기획 :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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