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정보
남원용마놀이(1970,전라북도)
종목 개요
구 분 | 내 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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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대회 | 제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
참여지역 | 전라북도 |
분야 | 민속놀이 |
종목소개
유래
남원지방에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용마전(일명 용말싸움․용마놀이․용마희라고도 함)의 유래를 동국여지승람,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을 종합하여 검토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남원군 산내면 지리산 기슭의 달궁부락은 기원 전 84년 마한의 여섯째 왕인 효왕 30년 경부터 기원 전 13년 열 번 째 학왕 3년까지 71년간 마한의 도읍지였는데, 이곳은 해발 약 1000미터나 되는 고원지대로서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전혀 지을 수 없는 천수답이었다. 그리하여 지리산 상봉에 올라가 해마다 기우제를 지냈는데, 지성이면 감천이듯 새까만 구름이 산봉우리를 뒤덮고 하늘로부터 용이 비를 몰고 내려와 농사를 잘 짓고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농사와 연관된 용의 전설이 많이 있는데, 지리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으로 크고 작은 강과 냇물에서 많은 용들이 승천하였다하여 남원지방 곳곳에 숱한 용소(沼)를 남겨놓게 되었다. 남원은 고대로부터 용으로 인해 잘 사는 고을이라 하여 고용군이라 이름하고, 후손들이 용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 용마놀이를 시작했다고 한다. 용마놀이는 남원성을 중심으로 남과 북의 두 편으로 나뉘어 싸움하고, 그 결과로 길흉과 풍년․흉년을 점쳤다는 유래가 전한다.
특색
이 놀이는 놀이의 구성과 형식에 비추어 볼 때 안동차전놀이, 광산 고싸움놀이와 흡사한 듯 보이나 실상은 다르다. 아마도 밀양군 무안에서 행해지는 용호놀이와 같은 계통으로 짐작된다. 용마놀이라는 이름과 유래에서 알 수 있듯이 남원지방의 백성들은 용을 숭배하고 기리는 뜻에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용과 결부된 지명을 가지고 있다. 백제 소길왕은 남원이 용으로 인해 섬진강․순자강․적성강․축천․원천 등 강과 냇물이 띠를 두른 것처럼 많다고 하여 고용군을 대방군으로 고쳤고, 구수왕은 남쪽에서 제일이라 하여 남대방이라 하였다. 남원은 고대로부터 길용군, 용성부, 교룡산성, 구룡폭포, 용담사, 용담리, 용두산, 청룡사, 용성관, 옥용추, 구룡대, 용추촌, 길용서원 등등 삼십여 개 이상의 용과 관련된 지명과 건물명이 남아있다. 옛날의 남원부사들은 이 민족 고유의 용마전 놀이를 후손들에게 전하고, 남원부민의 단결을 강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권장 후원하였다. 따라서 남원지방의 행사 가운데 가장 성대히 치러지는 축제의 한마당이었으나 조선조 말기에 이르러 여러 가지 사정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구성
이 놀이는 놀이의 전단계로 마을 유지들의 회합과 놀이기구 제작이 있다. 이 단계가 끝나면 본격적인 놀이마당이 벌어지게 된다. (1) 사전 회합 (2) 놀이기구 (3) 놀이의 순서
내용
해마다 동지가 되면 남원부의 남과 북의 유지들이 모여 놀이를 치를 것에 대해 모임을 갖고 준비위원을 구성한다. 여기에서 물자와 동원할 인원 수, 경비의 조달을 협의한다. 경비는 결정한 날로부터 섣달그믐까지 약 한 달간에 걸쳐 유지들의 기부금으로 충당하는 것이 관례이다. 그런데 실제적인 놀이의 준비는 정월 초닷새부터 열흘 안에 끝내게 된다. 마을 주민들의 합심하여 제작한 용마를 수레에 싣고 정월 대보름에 넓은 장에서 싸움을 벌이게 된다. 놀이의 과정은 남부의 백룡과 북부의 흑룡 약 50여 미터 길게 늘어서서 상대를 공격하게 된다. 싸움의 지휘자가 오른쪽에 지휘봉을 뜻하는 새끼방망이를 들고 방망이를 앞을 향해 계속 내리치는 시늉 하면 전진, 왼쪽으로 휘저으면 왼쪽으로 돌고, 오른쪽으로 휘저으면 오른쪽으로 돌며, 방망이를 머리 위로 올리면 후퇴하라는 지휘로 약속하여 서로 상대방의 용마를 공격하는 형식이다. 이렇게 한참 싸우다가 상대방의 용마를 먼저 부숴버리면 놀이가 끝나게 되고 이긴 편은 환호성을 지르며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며 광장을 돈다.
놀이기구
용마는 나무․대․종이․베로 만든다. 나무와 대로 용을 만들고, 종이와 베로 겉옷을 입히고 오색으로 채색을 한다. 용마를 매는 수레는 길이 4~5m 가량의 나무 3개와 3m 가량의 나무 3개를 서로 석 줄로 교차하여, 교차한 부분을 끈으로 동여 만든다. 이렇게 묶은 앞쪽(폭이 좁은 곳) 첫째 칸 가운데에 1m 가량의 판자를 얹고 고정시킨 다음 용마를 앉혀 완성한다.
관련링크
자료출처
- 출처 : 『한국의 민속예술 50년사』
- 발행연도 : 2009.12.31
- 발행 : 제50회 한국민속예술축제 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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