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전무(1971,경상남도)

종목 개요

구 분 내 용
참여대회 제12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참여지역 경상남도
분야 무용
수상(단체상) 문공부장관상

종목소개

유래

승전무에 대한 기록은 옛 문헌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그 확실한 기원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고려 때부터 북춤이 궁중에서 의식무용으로 쓰였고, 조선시대에는 무고라는 이름의 북춤이 고종 때까지 정재무용으로 전해왔다는 사실에 비추어 그 역사는 꽤 오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러한 북춤이 통영에 전해진 것은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된 이후 영문에 예속된 교방청의 기녀들이 중앙과의 빈번한 교류를 통해 궁중에서 추던 무고를 유입함으로써 정착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임진왜란 중에는 이순신 장군이 장졸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병선 위에서 북춤을 추게 하였고, 이후 충무공의 춘추향사와 탄신제에서도 사당에서 헌무함으로써 당초의 궁중정재무인 무고가 점차 민속무용으로 변모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일명 통영북춤이라 한다.

특색

궁중무고와 일맥상통하는 승전무는 주로 춤을 추고 북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과정에서 무고와 여러 가지 유사점을 갖는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춤가락이 독특하며 무태가 과장되지 않고 순박한 점이 특징인데, 특히 협무가 흰 치마저고리를 입는 점과 춤은 추지 않고 창사만 불러주는 점, 무대의 이동에서 동작이 화려한 것 등이 두드러진 특징이라 하겠다. 이 춤을 승전무라 부르는 이유는 통영에 충무공의 사적이 많고, 충무공의 승첩지로 관계가 깊은 점, 또 춤을 내용도 충무공의 충의와 덕망을 추앙하며 전승을 축하하고 장졸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사기를 북돋기 위한 것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구성

통영승전무는 특별히 연희과정을 독립과정으로 나누지는 않는다. 대략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큰북 1 (2) 원무 4인 (3) 협무 12인

내용

이 춤은 무고와 마찬가지로 북을 중앙에 놓고 북채 2개씩을 북 앞에 나란히 놓는다. 그러면 원무 4인이 등장하여 북채 뒤에 한 줄로 섰다가 동서남북으로 나뉜 다음 꿇어앉아 북채를 어루는 춤을 춘 뒤에 북채를 들고 일어나 북을 치면서 노래를 부른다. 춤을 추면서 돌면 협무 12인은 외곽을 에워싸고 돌면서 창을 한다. 이때 중앙에 놓은 북은 구병법의 모든 지휘, 호령, 신호를 알리는데 사용하였다. 1번 울리면 집합, 2번 울리면 진격 또는 전투개시, 3번 울리면 퇴진, 또는 정지를 뜻한다. 즉 흩어졌다 모여드는 형태는 구병법의 삼진삼퇴를 하고 되돌아서서 북을 치는 것으로 진행된다. 춤의 반주로는 염불도드리장단과 타령장단, 굿거리장단이 연주되고 악기는 피리․해금․장구․북 등이다. 춤은 창에 맞춰 추는데 창의 전주 가사는 다음과 같다.

달이 높이 고이 돋을사 / 지화 지화 지화자 어기야 어가 어허점 / 지화 지화 지화자 우리 우리 충무 장군 덕택이요 / 지화 지화 지화자 낙지자(樂之者) 오날이야 / 지화 지화 지화자 / 지화호라 지화자

북을 중심으로 둘러선 원무 4인이 정지상태에서 위와 같은 창사를 한 소절 부르고 난 후에 좌편으로 돌면서 춤을 추고 한 칸 건너가서 선다. 이와 같이 북을 중심으로 흩어졌다 모였다 하면서 창의 각 소절이 끝나도록 추고 되풀이한다. 위 노래 가사의 뜻을 새겨보면 첫 소절은 진중의 한 공간을 나타내고, 둘째 소설은 병선이 운항할 때의 흥겨운 뱃노래를 나타낸다. 셋째 소절은 충무공의 위훈을 찬양하고, 넷째 소절은 싸움에 이겨 즐거움을 뜻하며, 다섯째 소절은 싸움에 이겨 기세를 올리는 뜻이 있다.

놀이기구

청․홍․흑․백 등 4색의 쾌자, 족두리, 한삼, 비녀, 북틀, 북, 휘장 등의 의상과 도구가 사용된다. 이밖에 반주악에 쓰이는 악기도 필요하다.

문화재 지정 현황

-국가무형문화재 승전무 (1968.12지정)

관련링크

자료출처

  • 출처 : 『한국의 민속예술 50년사』
  • 발행연도 : 2009.12.31
  • 발행 : 제50회 한국민속예술축제 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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