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석전놀이(2010,경상남도)

종목 개요

구 분 내 용
참여대회 제51회 한국민속예술축제 및 제17회 전국청소년민속예술제
참여지역 경상남도
분야 민속놀이
참여단체 김해민속예술보존회
수상(단체상) 은상 (충청남도지사상)

종목소개

개천이나 넓은 가로[街路] 등의 지형을 경계 삼아 수백 보 거리를 두고 일대의 주민들이 마을 단위로 편을 갈라 서로 돌을 던져 어느 편이 먼저 쫓겨 달아나느냐에 따라 승부[勝負]를 가리는 전통사회의 집단놀이다. 돌을 던지는 놀이라는 의미로 ‘석전놀이’ 또는 ‘돌팔매놀이’로도 불린다. 이렇게 서로 돌을 던지는 모의 전투경기는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다. 특히 많은 사례가 나타나는 곳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로, 이들 지역의 석전놀이는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의 석전놀이는 편전[便戰], 석편전[石便戰], 변전[邊戰], 척석희[擲石戱] 등으로 불려왔다. 그 역사가 오래되어 7세기에 발행된 중국의 역사서 《수서[隋書]》의 〈고려전〉에도 나타난다. 그 내용을 보면 “고구려의 수도 평양에서는 매년 대동강을 사이에 끼고 사람들이 서로 돌을 던졌는데, 그것을 왕이 관람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는 석전놀이가 이미 7세기 이전부터 고구려의 정월대보름 행사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또한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신라에 석투당[石投幢]이라는 돌팔매질하는 군대가 조직되어 있었다고 한다. 김해지방에서는 해마다 4월 초파일과 5월 단옷날에 석전놀이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 풍속에 따르면, “매년 음력 4월 초파일 경부터 어린아이들이 떼로 모여 성[城] 남쪽에서 좌우로 편을 갈라 석전놀이를 한다. 그러다 5월 단오가 되면 젊은 장정들이 어울려 모여 좌우로 편을 갈라 깃발을 세워 북을 치며 고함을 지르고 사납게 날뛰면서 돌팔매질을 하는데, 마치 돌비[石雨]가 오는 것 같다. 비록 사상자가 나더라도 승부가 가려질 때까지 싸워 수령도 이를 금지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석전놀이는 5월 단옷날에 그 절정을 이뤘다.”라고 한다. 석전놀이는 돌팔매질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육박전을 벌이면서 몽둥이로 서로 때려 사람이 죽고 상하는 까닭에 때로는 금지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도 석전놀이는 계속되었는데, 정월에 서울에서 행해진 대규모 석전에서는 이를 금하려고 한 순사와 놀이를 하던 사람들 간에 몸싸움이 붙기도 했다. 광복 이후에는 마을 간 젊은 장정들이 위세를 겨루던 석전놀이를 더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이렇게 한국사회의 근대화 과정에서 사라져간 전통문화를 부활시키려는 움직임과 연동해 석전놀이는 모의 전투 형식으로 재탄생했다. 김해석전놀이는 동서지역 마을을 중심으로 한가운데에 하천을 두고 각각 좌부와 우부로 편을 나누고, 중앙에는 하천을 두고 좌편대 120~240여 명이 종대로 농악에 맞춰 입장한 후 돌덩이 대신 모래주머니나 돌 모양의 압축스펀지로 전투하는 전통 민속놀이다. 석전놀이는 용맹스러운 우리 민족의 기상을 엿볼 수 있는 유래 깊은 한국 고유의 집단놀이다. 전쟁 등 유사시에는 석전꾼들이 동원되어 큰 활약을 했다. 당시 사람들은 이 놀이를 통해 우환을 떨칠 수 있었으며, 한 해의 안녕과 풍년을, 그리고 질병이 없기를 기원했다.

자료출처

  • 출처 : 『한국민족예술축제60년. 변화와 도약 해적이』
  • 발행연도 : 2019.12.31
  • 기획 :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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