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오광대탈놀이(2019,경상남도)

종목 개요

구 분 내 용
참여대회 제60회 한국민속예술축제 및 제26회 전국청소년민속예술제
참여지역 경상남도
분야 민속극
참여단체 고성오광대보존회
수상(단체상) 대상 (대통령상)

종목소개

‘고성오광대’는 주로 정월대보름에 연행되었으며, 이는 조선 말기부터 활발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그 명맥을 이어가기 어려웠고, 결국 광복을 맞이하고 난 직후인 1946년에 가야극장과 시민극장에서 다시 고성오광대를 볼 수 있었다. 이후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로 선정되었으며, 이는 곧 사단법인 고성오광대보존회를 구성했다. ‘오광대’는 탈을 쓴 광대 다섯 명이 등장하는 놀이라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과, 다섯 과장으로 구성되어 불렸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다른 지역의 오광대는 다섯 과장이 아닌 여섯 과장이나 일곱 과장으로 구성되기도 하기에, 경남 일대의 탈놀이를 모두 ‘오광대’로 설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다섯 방위를 상징하는 다섯 명의 광대가 등장해 오광대라고 이름을 붙였다는 것에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고성오광대 각 과장은 연극성이 매우 뚜렷하다. 1960년대 이전과 재현 당시, 그리고 2000년대 이후, 시간을 거치며 조금씩 그 구성이 변했는데, 현재는 다섯 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과장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과장 ‘문둥북춤’ 천형의 한을 표현하는 전반부와 한의 승화를 표현하는 후반부로 나뉜다. 조상이 지은 죄로 자손이 문둥이가 되었다는 전반부의 한을 신명으로 승화하며 북과 북채를 쥐고 힘껏 춤을 춘다.

제2과장 ‘오광대놀이’ 양반과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말뚝이가 등장해서 양반을 조롱하는 대사를 주고받으며, 양반과 어울려 춤을 춘다. 말뚝이는 봉건사회에서 서민을 대변해 자신들의 설움을 이야기하고, 양반을 비판하는 서민의 대변자라고 할 수 있다. 말뚝이의 춤사위와 양반춤이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말뚝이의 춤은 보폭이 크고, 전체적으로 힘이 넘친다. 이에 비해 양반의 춤은 여유롭고, 유유자적하다.

제3과장 ‘비비’ 양반을 아흔아홉 명 잡아먹은 상상의 동물 비비가 양반 한 명을 더 잡아먹으면 승천할 수 있다 하며 양반 비비를 노린다. 양반 비비는 자신이 양반이 아니라고 하며 비비의 위협을 피해 가려 애를 쓴다.

제4과장 ‘승무’ 승무과장은 승려의 파계 행위를 보여준다. 세속의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고 유혹에 넘어가는 스님의 이야기를 대사 없이 춤으로만 그려낸다. 선녀가 먼저 등장해 춤을 추고 있으면, 승려가 뒤이어 등장해 선녀를 유혹해 함께 퇴장한다.

제5과장 ‘제밀주’ 처와 첩간의 갈등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제60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는 ‘백인 덧배기’라는 장이 새롭게 덧대어졌다. 고성오광대는 지난 50여 년간 여름·겨울 방학을 이용해 전국의 대학생, 청소년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전수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이윤석 보유자를 필두로 초심자부터 40년 이상 오광대를 전수한 이들이 모두 모여 기본춤을 춘다.

고성오광대는 널리 알려진 유명한 민속놀이로, 전수가 매우 활발해 비교적 많은 사람이 체험해본 것으로 보인다. 뚜렷한 전통성과 함께 현재까지도 널리 전승되고 있다는 점은 고성오광대의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고성오광대가 제60회 대회를 맞이해 과장을 새롭게 꾸며 선보인 것에는 큰 의미가 있다. 민속문화가 보존되고 전승되기 어려운 지금, 이러한 활동을 통해 민속문화가 더 널리 전승되고, 원형이 더 소중히 보존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화재 지정 현황

-국가무형문화재 고성오광대 (1964.12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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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 출처 : 『한국민족예술축제60년. 변화와 도약 해적이』
  • 발행연도 : 2019.12.31
  • 기획 :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사진자료

동영상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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